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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08. 2024

님아, 그 수건을 목에 두르지 마오

부끄러움은 나의 몫

   어느 토요일 점심시간, 우리 가족은 각자의 일로 흩어져 있다가 자주 찾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글학교에 있던 아이들을 픽업한 나와 아이들이 남편보다 먼저 도착했다. 마침 편안해 보이는 창가 자리가 보이길래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잡기 어려울 때가 잦은데, 운이 좋았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살펴보며 아빠를 기다리기로 한다. 아들은 받아쓰기를 많이 틀렸다고 아쉬워하고, 딸은 한글은 뒷전이고 만들기 한 것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한글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 두 아이들에게 칭찬을 듬뿍 해줬다.


   잠시 후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편을 발견했다. 운동을 마치고 온 남편에게선 생생한 기운이 느껴졌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 가벼운 발걸음, 살짝 풍겨오는 땀냄새. 불혹을 넘긴 그에게서 소년의 모습이 얼핏 비친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남편을 만날 때면 여전히 일말의 설렘을 느낀다. 조금 주책 같지만,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편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훨씬 좋다. 이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 일순 목에 걸린 수건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 수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친정 아빠가 어딘가에서 받아다 준, 연식이 좀 된 하얀 수건이다. 우리 집에 있는 대부분의 수건이 그렇듯, 무언갈 기념하는 문구가 적혀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창립 50주년...'

50이라는 숫자는 중요하니까 섬세하게도 빨간 폰트로 새겨져 있다. 그의 스포츠 패션을 완성하는 종교색 짙은 수건을 보는 순간, 내 눈앞의 남자에게서 느껴지던 소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저씨만 남았다.


"아저씨, 그 수건 어디다 집어넣으면 안 될까?"

"이거? 왜? 땀이 많이 나서 목에 걸고 다녔어."

"응. 근데 이제 운동 끝났으니까 넣자. 그리고 다음부턴 다른 수건 챙겨 오면 안 돼? 거기 한글로 뭐 적혀 있는데... "

"우리 집 수건에 뭐 안 적혀 있는 게 거의 없어."

"찾아보면 안 적힌 거 있을 거야. 집에 가서 찾아보자."

"이 수건이 운동할 때 쓰기에 얇기가 딱 좋은데... 아니, 여기서 누가 한글을 알아본다고. 아무도 신경 안 써."

"여보, 이 동네에 한국 사람 되게 많은 거 알잖아. 그리고 내가 써, 신경. 내가 그냥 좀 창피해... 플리즈..."


   내가 다른 사람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걸까. 그까짓 수건 따위. 본인이 쓰기 편하면 그만인 것을.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목에 걸린 수건에 뭐가 적혀 있든 크게 관심도 없을 것이다. 설사 잠시 눈길을 끈다 해도 그때뿐. 솔직히 내 눈에는 이런 남편의 모습이 부끄러우면서도 귀엽다. 이 두 감정이 공존하는 게 가능한 건가 싶지만. 어쨌든.


   지난여름 파리에서 본 한 청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다양한 언어가 적혀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던 청년. 거기서 한국어를 발견하고 잠시 국뽕에 젖었던 기억(촌스럽게..). 단지 티셔츠 하나 때문에 처음 보는 그 청년에게 느꼈던 호감.

   그래, 나는 남편의 원픽 수건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청년이 입고 있던 티셔츠 보다야 좀 아저씨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그 수건에 무관심하거나 적어도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수건을 아무렇지 않게 두르고 다니는 남편의 당당함을 고마워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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