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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Apr 10. 2024

심심한 애들을 방치하면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는지, 우리 집 두 아이는 함께 살기에 어렵지 않은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신생아 때부터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았다. 놀아달라는 말 없이 혼자서도 꼼지락꼼지락 잘 노는, 전개를 흩트려 놓는 법 없는 드라마 속 아기 배우 같았다. 그랬던 아이 둘이 함께 놀기 시작하니 더 잘 놀았다. 정말 개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특히 심심할 때 그들의 창의성은 폭발하고, 그 창의성이 웃음 포인트다.


   코로나 감금 시절, 너무 심심했던 아이들의 우주인 놀이가 떠오른다. 하얗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주복으로 탈바꿈한 기저귀. 그 우주복을 머리에 쓰고 온 집안을 쑤시고 다니며 우주 탐험을 하던 아이들. 그 모습에 나는 그만 깔깔깔 웃어 버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기저귀의 쓸모를 발견하게된 날이자, 집이 우주로까지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하다고 느꼈던 날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무중력 속 아이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놀이는 따라 하기 공연이다. 방학 중 심심하다는 아이들을 방치했더니 만들어진 공연. 거실에서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방에서 쉬고 있던 내게 요시타케 신스케의 『뭐든 될 수 있어』 그림책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 나와 보세요. 우리가 준비한 게 있어요."

이 책에 등장하는 나리라는 어린이는 엄마와 게임을 한다. 나리가 흉내 내는 것을 엄마가 맞히는 게임. 나리의 상상력은 깜찍하다. 엄마의 반응은 현실적이라 공감이 가고 재밌다. 거기에 그림까지 귀여워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을 따라 거실로 나가보니 평소 나와 있지 않던 물건들이 늘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한참 나를 찾지 않아 가보면 사고를 치고 있거나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예삿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그림책 속 나리를 따라 했다. 꽤나 비슷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름 진지하게 연구했구나 싶었다. 어쩜 저 소품들을 다 찾아냈을까 신통했다. ‘뭐든 될 수 있’는 우리 집 어린이들의 공연은 나만 보고 있기 너무 아까울 정도로 멋지고 사랑스러웠다. 웃음이 팡팡 터지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정답은?

   가끔 아이들이 어쩜 그렇게 잘 노느냐고,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내 대답은 '아이들이 그냥 잘 놀게 태어났습니다.'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아이들을 너무 심심하게 놔둬서.'가 되겠다. 심심할 때 아이들은 재밌게 놀 궁리를 한다. 그렇게 찾아낸 놀이는 보통 자기가 개발한, 자신이 주도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이런 놀이의 빈도수가 점차 줄어 간다. 이 꿀잼을 포기해야 한다니 정말 아쉽다. 둘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각자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둘이 함께 놀 때는 잘 놀다가도 결국 싸움으로 끝날 때가 잦다. 한때는 우리 애들은 안 싸운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는데, 몇 년 사이 현실 남매의 모습을 갖췄다. 이 모든 게 커가는 과정, 자연스러운 과정일 테다.


   그 과정 속에서 둘만 아는 말장난을 개발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서로에게 들려주기도 할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했다가도 서로를 헐뜯기도 할 것이다. 내가 우리 오빠와 그랬듯 말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갈 남매의 시간을 기대해 본다. 설령 성인이 되어 남남처럼 지내게 된다 하더라도, 함께 살며 만들었던 추억이 가끔 서로의 마음 한 구석을 따스히 데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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