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안타깝게도 회사를 다니는 것은 해커톤 프로젝트가 아니다. 매일 일상으로 지속해야 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한 번에 사용한다면 더 이상 지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꽤나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편이라고 평가를 종종 받는다. 어찌 보면 칭찬같이 들리지만, 그만큼 여유가 없고 폭주 기관차처럼 보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띄고 있다. 확실히 의욕과 열정이 넘쳤던 시기였을 수록 동기부여가 빨리 떨어졌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회사의 측면을 넘어서서, 스스로의 진로를 바라보았을 때 이들이 가지는 장기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결국에는 조바심 내지 않고 꾸준하게 좋은 인풋을 제공해야 보람 있고 안정적인 결과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의욕과 동기, 실행할 에너지를 지속시키는 노하우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 번은 강력한 추천으로 뇌과학 도서 (하단 링크 참조)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취향으로만 생각했을 때 당시만 해도 접할 확률이 낮은 책이었지만 '의지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뇌의 생물학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된다'라는 설명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책 속에는 다양한 뇌내 물질이 소개되었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물질은 바로 도파민이다. 인간의 뇌는 도파민을 통해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동기부여를 시도한다고 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전두엽을 자극해 정보처리 능력과 주의 집중력을 불러일으켜 학습능력이 증진될 뿐만 아니라 해마와 측두엽을 자극하여 기억력이 상승한다. 또한 도파민은 기쁨과 행복, 흥분의 물질로 긍정적인 감정을 선사해준다. 게다가 긍정적인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로, 일상에 있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기에 업무의 에너지원으로써 도파민을 활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일들이 스스로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는 '인간'이기에 생리적,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생성 원인과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생성 단계와 시점은 다음과 같이 총 6가지이다. (책 속에선 7단계로 소개한다, 다만 7단계의 경우 반복하라는 메시지이기에 생략했다.)
1. 명확한 목표를 세울 때
2. 목표를 이룬 자신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때
3. 목표를 자주 확인할 때
4. 즐겁게 실행할 때
5. 목표 달성에 대한 보상을 받았을 때
6. 이후 더 약간은 어렵고 강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이렇게 모든 과정까지 끝마친 후 활력과 동기부여에 중독된 인간은 다시 1번의 과정으로 돌아가는 형태를 보인다고 한다. 결국 작은 성공경험들이 모여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UX 디자이너를 직업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작은 성공경험을 맛보았던 경험 때문이다. 이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나름의 재미요소를 찾는 것과 이어진다.
일과 회사가 즐겁다는 건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당연히 그 안에서 엄청난 즐거움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재미보단 지루함과 때로는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해야 하는데 지루하기만 한 활동을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무슨 일을 하던 재미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관련된 나의 소소한 일화가 하나 있다. 나의 출근길은 도보로 20분 걸리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가 시작이다. 건강을 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아침시간엔 20분 동안 걷는다는 것이 살짝 부담도 되고 걷기 싫은 날이 사실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던 길에 있는 담배가게에서 길고양이 5마리를 발견하게 됐다.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출근길도 귀여운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20분이 5분처럼 느껴졌다. 결국 출근길에만 걷기로 했던 마음은 재미요소를 찾아내자 퇴근길에도 걸어가게 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혹은 재미요소를 찾기가 어렵다면 역발상이라는 방법이 있다. 앞서 말한 도서의 저자가 동기부여를 위해 추천하는 방법인데, 긍정적인 생각으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다고 한다. 유명 강연자 김미경 님은 강의를 진행하는 게 가장 재밌지만 가장 싫어하는 일은 강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을 통해서 내가 알 수 있었던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번 나를 자극시키는 즐거움만을 쫓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 매우 불행한 일처럼 들리지만, 사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의무와 같은 일에 새로운 목적을 부여해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은 진정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라고 생각해보자. 기왕 해야 하는 거 억지로 하는 것보단 리프레이밍을 통해 스스로를 자극시키는 것이 효율이 높아지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앞선 두 가지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마인드셋으로 열심히 동기부여를 시도하고자 했어도 어떤 때는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앞선 두 가지보다 어떻게 보면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바로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좋은 동료는 상황에 따라서 정의 내리기 나름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기준은 나의 장점으로 채워줄 수 있고 상대의 장점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상호보완이 가능한 관계다. 매번 그런 운이 따르진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실제로 그런 동료들을 만났던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10명도 안 되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당시 기획과 디자인, 의사소통 등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내야만 하는 상황에 속해 있었다. 경험도 부족한 데다가 약간의 완벽주의를 띄고 있던 나에게는 꽤나 힘든 시기였다. 제품을 잘 만들어내고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순전히 내 탓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시각적 디테일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이었고, 그런 부족함은 디자이너로써 꽤 위험한 단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동료가 있었다. 그때 나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함께 근무하시던 앱 개발자 분이었다. 평소에 UI 디테일에 관심이 많아 마이크로 모션까지 놓치는 부분 없이, 매끄러운 UX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분과 함께 일하던 시기만큼 시각적으로 완성도를 꼼꼼하게 챙길 수 있었던 경험은 손에 꼽는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도움을 받아 발전시키고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으며, 혼자 고민하고 일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협업을 넘어서서, 좋은 동료에게는 업무를 넘어서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한 번은 대학생 PM 인턴 분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타고난 커뮤니케이터로써의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마구 퍼부어주는 분이었다. 밝은 말투와 솔직한 표현,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통해 타인으로 하여금 의견을 쉽게 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특히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재해석해야 하는 UX 디자이너로써 탐나는 능력임에는 분명했고,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해 준 감사한 분이다. 이 경험을 통해 하는 일도 다르고 연차가 오래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동료는 지속하기 힘든 기로에 섰을 때 궁극기처럼 느껴진다. 무언가 시도하기에는 진이 완전히 빠졌을 때 그들이 곁에 있다면 가장 빠르고 쉽게 에너지 충전이 가능하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스스로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좋은 사람들은 친절함과 성실함, 그리고 여유를 갖추고 있다. 타고난 기질의 차이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대부분 체력이 좋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체력은 힘이 얼마나 세고, 운동능력이 좋은 지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스트레스를 충분히 견뎌내고 조절할 수 있는 정도의 컨디션을 갖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람의 성격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많이 좌우된다고 생각하지만 육체적인 상태가 상당한 영향을 주는 일이 많다. 실제로 심리상담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으로 확인하는 것이 수면과 식사 상태이다. 그만큼 매일같이 크던, 작던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 이를 버티는 힘은 직접적으로 몸에서 나온다.
체력을 기르는 방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욕심이 나서 체력을 다 써서라도 결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몸이 버티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분명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건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실제로도 번아웃이 오는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육체적인 요인도 분명히 크다고 한다. 그렇기에 억지로 시간을 내어서라도 휴식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류학적으로도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휴식이란 무엇일까? 실제로 나도 잘 쉬는 것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여러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에게 맞는 휴식을 하는 것이다. 물론 휴식 방법 자체를 고안하는 일도 스트레스가 된다면 나만의 방법을 추천하고자 한다. 바로 의도적인 '멍 때리기'이다. 나는 중간중간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개인적인 공간에서 5-10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머릿속을 비우고 나면 체력도, 스트레스를 견딜만한 정신력도 많이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준비물도, 많은 시간도, 고민할 것도 없는 단순한 방법이니 고민이 된다면 한번 활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휴식만 한다고 해서 체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휴식은 사람이라는 기계를 돌아가게 하는 원료라면, 운동은 원료를 조금만 넣어도 더 많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일명 '연비가 좋은 엔진'이다. 실제로 나도 간단한 운동을 시작한 후로 많은 것이 변화했다고 느낀다. 체력이 좋아지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쉽게 짜증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운동은 뇌과학적으로도 약간의 스트레스성 자극은 아드레날린 분비를 증가시켜 의욕과 투쟁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도 한다. 더불어 뇌내 마약이라 불리는 엔도르핀까지 분비되어 더 많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휴식과 운동, 식이 자체에 시간과 비용이 없어 고민하게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때야말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 커리어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몸의 레드플래그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와의 파트너십을 망가뜨리기 딱 좋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관계가 망가지면 안팎으로 문제가 생기기 쉽다.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것조차도 당연히 의미 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를 잘 돌보며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자.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24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