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도 나의 몫... 죽을 것 같다
한창 의욕에 불타오르던 무렵에 새로운 공모전에 나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어차피 투고 돌리면 뭐든 하나 될 거라고 생각했고 남는 시간에 해보자 하고 안일하게 계획한 것이다.
그 사이에 대형 공모전에서 낙방하고, 수정을 가미하여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넣어보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으며 난 작아졌다. 그들의 일관적인 대답은 이거였다.
저희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안 맞아서....
그래, 그게 뭔데! 무턱대고 아무 출판사에나 투고한 건 아니었다. 비슷한 장르를 한 번이라도 출판해 본 적 있는 출판사들에 거의 기계적으로 시놉시스와 원고를 보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 같이 짠 듯 같은 이유로 반려했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절필의 유혹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난 안될 거야 병에 걸려버렸는데 내가 저지른 저 일은 어쩌란 말인가. 공모전 나간답시고 돈 주고 또 강의를 수강하는 우를 범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게 주변에서 하지 말랬는데 도박처럼 이 수업을 들으면 자꾸만 잘 될 것만 같았다.
내가..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토끼 호적에서 파버려야지!
어쨌든 기한 내에 장편소설 한 질을 완성해야 하는 목표가 생겨버렸다. 분량은 원고지 600매. 대략 12만 자 정도.
선생님은 분명 웹소설 25화 정도 분량이라고 살랑살랑 유혹했고 난 44화까지도 써봤는데, 하며 호기롭게 도전했다.
그리고 갈갈이 갈렸다. 역시 정윤작가님 말대로 읽기나 열심히 더 읽을 것이지 갑자기 12만 자나 쓰려고 하니 내 온몸을 쥐어짜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운 좋게 소재는 구하게 되어서 쓰게는 되었지만 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렸다. 쓰다가 막히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난 또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으면서 글도 쓰려니 새벽 3시 전에 자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때론 다른 사람 책을 읽으며 이야... 이 사람은 이렇게 재밌게 잘 쓰는데 난 평생 책은 못 내겠다 하고 추가 좌절은 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음에도 재밌게 읽기만 하는 독자 입장이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써보려니 어려웠다. 흑 그들은 어떻게 쉽게 잘 쓰는 걸까?
그럼에도 드디어!
끝까지 다 썼다! 완결 쳤다!
내가 어떤 토끼인데? 꼬질꼬질한 김토끼란 말이다!
그동안 울고불고 웃으면서 어쨌든!
남은 기간 퇴고와 수정을 거쳐야겠지만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 중에선 내가 유일하게 원고지 600매와 분량이 유사하다.
반려비만 맞는 내 안타까운 웹소설처럼 이 녀석 또한 캐릭터들이 날 멱살 잡아끌고 갔다. 제발 내 이야기의 끝을 내달란 말이야, 이 무책임한 토끼야!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캐릭터들이 자기네들끼리 말하고 뭐 하고 갑자기 그러기 시작했다. 나는 숨 가쁘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쳐나갔다.
때로는 술김에... 때로는 약빨로... 이제는 초강력 피로회복제 세트까지 동원하여 글을 써냈다.
당연히? 얘도 될 리가 없다. 30일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써낸 장편소설이 어디에 당선되면 그것도 웃긴 일일 것이다. 보통 작가들이 책 한 권 낼 때 2~3년은 준비하니까 미리 여러 편 습작처럼 완결 친 사람들이 수정해서 낸 게 잘 되는 거겠지?
우리 집 편집장님이 내 글빨은 K-리그 2군 수비수 정도 같다고 했다.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좀만 더 노력하면 된다는데 여전히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저는 이만 퇴사하고 싶습니다》를 완결 냈을 때처럼 무언갈 하나 완결 냈을 때의 그 어마어마한 희열을 또 느껴봤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뭐지. 왜 눈물이 나는 거 같담.
게다가 이번 작품은 쓰면서 개인적으로 엄청난 공부가 되었고 앞으로 내 인생관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중간에 머리 식히기 용으로 시작한 《2025 브런치 그레이 어워즈》 효과도 톡톡히 봤다. 애 보는 짬짬이 주로 휴대폰으로 원고를 썼었다. (즌하 미안...ㅋ)
여러 작가님들의 인사이트가 글 쓰는데 좋은 참고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놓친 오타가 있긴 한데 죄송합니다...)
이제는 다시 겸허하게 독자로 돌아가 그동안 밀린 책들을 읽으며 잠적하려고 한다. 올 한 해 진짜 미친 글쓰기로 보낸 시간. 적어도 후회는 없다. 지난 14년 동안 못했던 걸 1년 동안 몰아서 했다고 생각하고 이만 사라져야겠다. 이제 곧 토끼는 먼지가 됩니다. 꽥.
Bye, bye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