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경험은 생각보다 그 힘이 크다. 지난 열흘 간 다양한 환대를 받았다. 힘을 받은 만큼, 그간 어떤 부분이 결핍되어서 힘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환대라는 것이 아주 대단한 어떤 것일 필요는 없지 싶다. 내가 받았던 것은, 나의 어려움을 눈치 채고 먼저 물어봐주는 것, 모든 것에 동의할 필요도 공감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나의 그 마음이 그럴 수 있겠다고 여겨주는 것, 그리고 나를 맞이하는 마음이 진심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쓰고 보니 사실 대단한 것이다.
냉담이나 냉소, 외면, 마음으로 대해주는 느낌이 아니라 머리로 나를 대하고 있을 때, 나같은 인프피는 급격히 쭈구리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머리로만 대하기로 설정된 관계 안에서는 당연히 그렇지 않고. 아니 사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어떻게 놓인 관계 안에서도 기본적으로 따뜻함을 유지하려 하긴 한다. 아주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삶이 아니라 다행히 그럴 수 있기도 하고.
가족들에게도 가끔씩 환대를 받으면 좋다. 기본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관계라지만,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과 의외로 환대의 경험을 나누지 않기도 해서 더욱더 한번씩 노력을 하면 좋은 것 같다. 며칠 전 아이들과 다같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남편이 말했다. 지금 우리 가족은 한참 공부한다고 바쁜 둘째와 나를 조금 더 배려하고 챙겨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남던지. 평소 말로는 잘 표현 안해도 행동으로 정말 많은 것을 도와주는 남편이지만, 특별히 그 마음을 표현해주었을 때, 내 존재에 대해 나의 지금의 움직임에 대해 환대받는 느낌이었다.
일로부터 받는 환대도 느껴진다. 요즘 조금씩 작업하는 몸으로 변해가는 게 좋다. 그 안에는 점점 아이들에게 맞춰졌던 안테나의 성능은 줄어들고, 집안 일에서 손을 덜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다스리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위치지우는 감각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조금 헤맸었는데 이것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싶다. 그렇게 되니까 내가 좋아서 하는 작업이 있다는 것이 또 엄청난 환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따라 필요한 모습으로 있어주는 자연, 그로부터 받은 환대까지.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든다. 이게 다 나에게 기꺼이 환대를 건네 준 모든 존재들 덕분이다. 하여, 받은 걸 기억하고, 누군가를 환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