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라
알람 없는 삶을 산지 1년이 넘었습니다. 핸드폰에는 최소한의 알람만 남게 되었고 다른 어플들은 Push알림도, 안내센터 알림도 모두 다 꺼버렸습니다. 핸드폰에서 울리는 소리는 오직 전화벨과 모닝콜, 은행 입금 안내 뿐입니다(짤랑!).
그런데 제가 알람없는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엉뚱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작년 봄.. 저의 오랜 꿈이었던 Playstation4 게임기를 친구로부터 싸게 업어오고, 그날 밤에 광진구와 인천을 돌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게임인 FIFA, NBA, MLB The Show 타이틀을 구매했죠. 축구, 농구, 야구 매니아인 저에게는 이 세가지 게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ㅋㅋ
그런데 어느 날 , 안그래도 게임이 잘 안풀리는데 옆에선 자꾸만 카톡과 SNS 알람이 울려대는 겁니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새로운게 뜨진 않았나 확인 하게되고, 중요한 순간에 자꾸만 전화가 소음을 울려대니 게임에 집중할 수도 없고.. 결국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채로 게임을 꺼버렸습니다. 그때가 결혼 직전이었는데 , 그 짜증이 데이트까지 가더군요 ... ㅋㅋㅋㅋ
생각해보면 저는 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누가 와서 다른 걸 하자고 한다거나, 엄마의 '밥 먹어라' 소리도 가끔은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지곤 했죠. 나의 계획에 없던 상황이 갑자기 생기면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알람을 끄고 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모든 알림을 카톡으로 꾸깃꾸깃 집어넣으려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것이죠.
알람을 끄기 전까지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 급한 용무의 카톡을 보지 못하면 어떡하지?
- SNS의 소식을 못들으면?
- 문자로 오는 택배 도착 소식이나 스케줄 조정은?
- 단톡방에서 도태되는거 아니야?
그러나 막상 시작하니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찾아왔습니다. 인간관계에 문제도 없었고, 세상으로부터 도태되지도 않았습니다. 떠오르는 장점 세 가지를 나열해봅니다.
1) 방해받지 않는 행복
인간의 뇌는 멀티태스킹에 취약합니다. 동시에 두가지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은 착각인 것입니다. 오히려 두가지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가지 일에 집중을 쏟다가도 카톡이 울리거나 다른 뜻밖의 요인이 개입된다면 뇌는 에너지를 사용해 주의력을 새로운 대상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이죠. 한가지 일에 깊이 몰입할 때(십자수를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게임을 할 때에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결과가 증명합니다. 즉, 몰입의 상태를 깨뜨리지 않는 것이 뇌의 행복을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와 만나서 미팅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알림에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함께 있는 상대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더 깊은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죠.
2) 급한 일은 생각보다 일어나지 않는다
1년동안 카톡과 메세지의 알람 없이 살았지만, 급한 용무가 있어 급하게 답변을 해야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습니다. 있었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걸 보니 그다지 중요한 이벤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약속을 정해야 한다거나, 빠른 답변이 필요한 대화가 오고가는 경우에는 제가 먼저 앱을 열어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왜 이렇게 답이 느리냐고 성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제가 회사원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급한 용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도 급한 일이 있다면 전화를 먼저 하지 않았을까요?
3) 언제 어디서든 숙면 보장 !
밤에 자다가 울리는 카톡소리에 깨보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동안 울리는 핸드폰에 단잠이 달아난 적도 있을거에요. 알람이 없으면 그 짧은 시간도 가장 효율적이고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날이 많은 저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뜻밖의 행복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발전은 24시간 사용 가능한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도록 해주었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대비해야한다는 피로감을 함께 선사해주었습니다. 단톡방, 뉴스, 새로운 소식으로부터 늦지 않으려는 - 사회화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 무의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게 된 것이죠. 최근 코로나 때문에 매일 울려대는 긴급재난문자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일상이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면 일의 효율과 삶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스마트폰과 기술의 발달은 어느 새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특히나 어떤 것에도 몰입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는 것이 큰 문제라고 봅니다. 어린 아이들의 집중력 형성에도 문제가 될 것이고, 새로운 것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뇌의 주의력도 제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상황과 환경이 있으니 꼭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저의 짧은 후기를 통해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자신의 스마트폰 사용, 몰입과 집중, 숙면과 행복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
글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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