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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디 Nov 23. 2022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와 너를 위하여

감히 적어본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에 대한 고찰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항상 탄생에서 멀어져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는 우리 인간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겪도록 설계된 게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며 젊음을 하나씩 버려가는 것, 주변의 것들은 빠르게 변하지만 따라잡지 못하고 맴도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고 떠나지만 남아야 하는 것, 건강이 걱정되고 잔병치레를 겪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 싱싱한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아무 걱정 없던 어린 날의 나와 비교하면, 나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직접 칼럼을 쓰고 고민을 들어주는 '정신의학신문'이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됐다. 사연과 질문 게시판에는 '그만 살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글쓴이는 힘든 현실을 견뎌내다 보니 삶의 목표도 미련도 없고 그만 살고 싶다고 했다. 덤덤한 어투로 이야기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글의 밑에는 장문의 답변이 달려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를 소리 없이 소복이 덮어주는 하얀 눈 같은 글이었다.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님 감사합니다.) 아래는 감명 깊게 보았던 답변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자살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외의 행복이 아닌 마음들, 예컨대 불안, 우울, 두려움,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기 비하, 관계에 대한 어려움,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병’, ‘없애버려야 할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내 마음의 기본적인 상태, ‘정상’ 상태는 어떠한 부정적인 현상도 없는 행복한 상태이고, 아니 그래야만 하고, 이에 벗어나는 것들은 ‘비정상’, ‘교정하고 수정해야 할 문제’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마음속에서 성공적으로 제거해야만 비로소 나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회복된 정상 상태’가 되어야만 다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평소 우리가 마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이야기에는 굳이 지나친 시선을 두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나 자신만큼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네 마음은 그럴 만 해.’, ‘넌 괜찮아.’라는 인정과 확인을 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슬픔도 걱정도 없는 상태가 정상이고 행복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 괴로움이란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관점은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로움의 주위를 맴돌게 하기도 합니다. 그보다는 비록 (심지어 나의 잘못이 아니었던) 괴로움이 때로 내 마음을 찾아오더라도, 슬플 때는 슬픔을, 기쁠 때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며, ‘행복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라기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담담히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면 어떨까 합니다.





SNS나 예능에서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만 계속 보여주곤 한다. 24시간 행복한 것에만 노출되다 보니 우울한 나는 비정상이라고, 즐겁게 웃고 있는 저 사람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그들이 정해둔 행복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행복도 찰나에 있었지만 그 나머지 시간들은 즐겁지 못했다. 오히려 더 우울하고 서글퍼졌다.



행복의 기준은 내가 세워야 한다는 것. 심지어 과거의 나조차도 내 행복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와 비교해 죽음에 더 가까워진 나는 쌓아온 경험(타의든 자의든)과 깊은 감정들의 복합체이다. 그래서 한번 겪었으니 되었다 싶은 일들을 통해 슬픔도, 분노도, 아픔도, 불안도 무엇인지 아는 내가 됐다. 그러한 감정들에 마주할 때면 여전히 아프지만 '또 왔니?'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여유로움이 나를 씁쓸하고도 기쁘게 한다. 괴로움은 죽음이라는 필연 앞에서는 당연히 밀려오는 것들이라면, 그 속에서 담담히 행복들을 주워서 들여다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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