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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

마음을 나누는데 필요한 거래_1

by 인이상

심리 상담 영역에서 스스로 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은 ‘자발적’ 내담자로 지칭된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상담센터를 찾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과정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힘든 과정의 선택만으로도 이들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더 나은 삶을 향해 한 발 내디딘 거나 마찬가지다.


하루는 헤어숍에 앉아 커트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심리 상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늘 똑 부러지게 원장과 고객을 챙기는 스탭이 “저 얼마 전에도 갔다 왔는데. 저 다니는 곳이 있어요. 항상 가지는 않는데 ‘가야 할 것 같은데’ 할 때 가끔 가요,”라며 평상시 툭 던지는 말투로 내뱉었다. “어, 진짜?” 원장은 자기 스텝이 상담받으러 다닌다는 사실에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젊은 친구들은 진짜 다르구나’ 정도의 뉘앙스일 뿐 ‘이상한 애 아냐’라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이렇듯 심리상담센터는 내과, 치과, 커피숍처럼 동네에 꼭 필요한 편의시설이 되고 있다.


심리상담센터가 동네 곳곳에 많이 들어서는 이유가 뭘까. 우울증,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난 탓일까. 오은영 박사 이후 정신과 의사들이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참여하고 유튜버로 활동하고, 이호선 박사의 호통 상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탓일까. 우리가 과거에 비해 나약해진 걸까. 공해가 많아진 환경이 결국 우리의 뇌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


과학의 발전으로 과거와 달리 인간이 경험하는 불편감에 관한 과학적 분석이 나오면서 우리는 불편함을 참기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택해고 있다. 이 과정에 심리 상담의 영역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해석이 적절할 것이다.


한 발 떨어져 생각해 보면 주변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점점 더 어색해지는 비대면이 일상이 된 사회 변화가 이러한 모든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해석이 가장 적확한 해석일 수 있다. “요새 애들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야.”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일상을 들여다보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거리를 걸을 때도,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을 때도, 옆에 누가 있을 때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이제는 “핸드폰 좀 보지마.“라고 하면 매너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막상 얼굴을 보면 어색하고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서로 대면하고 앉으면 진지한 고민보다 가벼운 농담거리를 주고받기만 할 뿐 자신의 속내를 꺼내지 않는다. 개인정보 수집에 기반한 챗지피티에 개인사를 공개할 망정 듣고나서 잊어버릴 수 있는, 남의 일에 장시간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는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나를 꽁꽁 감춘다.


비대면의 대면 소통 결핍의 시대, 우리는 누구와 고민을 나눌 수 있을까. 챗지피티는 이미 보고된 바대로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관련 업계 종사들에 의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챗지피티는 다크웹까지 파고들어 가 정보를 긁어모아 우리들이 고민을 호소할 때 적응적인 성장 지향 정보를 제공할 만큼의 윤리적 정제력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자살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자살하라고 하거나 심지어 자살 방법까지 알려준다. 물론 시스템은 사회 적응적 방식으로 발전하겠지만 알파고의 진화를 위해 이세돌과의 바둑 대국이 필요했듯 AI의 채팅 검색 프로그램 진화를 위해 우리는 온갖 날것의 생각과 감정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두렵지만, AI에게 말하는 것은 거리끼지 않는다. 왜일까. 안전함에 관한 왜곡된 신념이 주된 이유일 수 있다. 누군가에 이야기하면 혹시라도 내 이야기가 펴져나가 나를 공격할 수 있고, 내가 누군가의 가십거리가 되고, 나에게 심리적, 물리적 해를 가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 AI는 최소한 내 말을 옮기지 않을 테니 사이버 공간을 나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한다. 익명성이 보장될 테니 내 말이 DB가 된다는 사실 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런데 과연 익명성이 보장되고 있을까. 개인정보 노출 문제들을 보면 사이버 공간이 익명성을 가장 경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레트로 열풍이 일시적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레트로 요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와 뒤섞이고 재가공돼 매력적인 새로운 트렌드로 재탄생하고 있다. 돌아 돌아 결국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온기 있는 인간과의 접촉 본능이 있다. 관계가 두려워지고 그러다 무뎌진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맺기는 중요한 화두다. (뒤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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