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삶
결혼 후 남편 직장이 있는 어느 신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도시가 막 들어서는 곳에 초기 입주했던지라 주변엔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다녔고
가게라고는 부동산만 쭉 즐비했던 그 동네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었다.
나는 마트 하나 없는 그곳에서 갖태어난 딸아이 육아를 했다.
6년 연애 끝에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을 했고 기다리던 아기를 출산했는데,
아기와 단 둘이 집에서 머물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뭔가 혼란스러웠다.
결혼해서 좋았는데...
출산해서 좋았는데...
마음은 늘 어딘가 가야하는데 꽉 막힌 도로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듯이 턱 막혀있었고
체력은 항상 바닥이 나있었다.
밤에 지친 몸을 뉘이면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기도 했었다.
그놈의 K장녀. 멀리 사시는 부모님들께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를 보면
가끔 육아를 하면서 지나온 묵직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침에 아기가 너무 울어서 산발한 머리에 세수도 안 하고 잠옷을 입은 채,
아기띠에 아기를 메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던 어느 날 아침,
마침 출근 시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단정한 스커트에 적당히 긴 머리를 휘날리며 좋은 향수냄새를 남기고 내 옆을 지나갔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때.
대기업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가 늘 아이를 내게 맡기며 고맙다고 보내온 비싼 쿠키 세트의 달달한 냄새를 기억한다.
아이와 단 둘이 외출을 하고 점심을 해결하고 싶어 식당에 들어갔을 때,
메뉴 1개만 시킬 우리에게 자리를 줄 수 없다며 나가라고 했던 그 식당 주인의 얼굴을 기억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내 딸아이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
아이와 함께라면 한없이 약자가 되는 젊은, 아니 어렸던 그 엄마의 시절을 지나왔다.
그 엄마는 아이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잊고 두 팔을 한껏 벌려 아이를 보호했다.
그렇게 자신의 약함을 잊고 살다가 요즘 문득 깨닫는 것은,
아... 참 많이 강해졌구나.
많이 단단해지고 성장했구나.
나는 감히 말한다.
미련 없이 육아했다고.
내 체력과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도전했고 걸어갔다고.
꽤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고.
육아는 꽤 괜찮은 삶을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