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호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떤 면으로도 선진국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한국도 지금보다 더 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도 고소득, 선진국 대열에는 들어섰으나 지속적인 번영과 국민 절대다수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보완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일상에서 다문화, 평등주의를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는 호주에 와 보니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래서 외국에 나오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애국자 대열에 서게 되나 보다.
호주가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피할 수 없는 어려움 중에 단 한 가지만을 꼽으라면 단연코 음식이다.
아무리 애국자라도 입맛으로부터 오는 외로움, 어딘가 모를 쓸쓸함을 지우기 어렵다.
내 입맛을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내가 편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한식, 중식, 일식, 동남아, 중동, 양식 등 직접 만들 수 있는 음식이 꽤 많고, 일부러라도 외국인 친구들에게 묻거나 유튜브를 찾아 웬만한 음식을 흉내 내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음식을 잘한다손 치더라도 타향살이에는 늘 따라다니는 것이 익숙함으로부터의 결손일 것이다.
짜장면, 짬뽕, 초밥, 김치, 찌게, 동치미, 국수 등 한국에서야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어 정말 보잘것없는 일상이더라도 타향살이에서는 이마저 특별해진다. 한국에서라면 큰 어려움 없이 사 먹거나 쉽게 구하거나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재료가 모자라거나, 도구가 부족해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치미다.
천일염을 찾아야 하고, 절이거나 보관하기 위해 꽤 큰 저장용기가 있어야 하고, 김치냉장고도 필요하며, 익는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서울집에서라면 모두 구비되어 있지만 이곳 호주에서는 너무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근처 아시아 식품가게에서 동치미 육수를 찾았다. 이렇게 기쁠 수가.
소면을 삶고, 육수에다 당근, 오이, 토마토, 삶은 달걀을 얹은 다음 얼음을 가득 담고, 끝으로 참기름 한 방울, 참깨로 마무리.
아~
울긋불긋한 한 그릇, 향긋한 참기름, 쫍쪼름하고 시원한 동치미 육수, 쫄깃한 면발에 오이의 아삭함과 특유의 상큼함, 달콤한 당근, 드문 드문 터지는 고소한 참깨, 마지막으로 삶은 달걀을 먹고, 달콤 쌉쌀한 토마토로 마무리할 때의 포만감과 온몸 가득한 만족감.
고국의 향수를 잊게 하는 즐거운 탐닉(耽溺, savor)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