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와 T 공생하기 Nov 29. 2024

무림고수의 공통점

기본기

어릴 적 TV 만화 영화에서 무협 장르는 빼놓을 수 없는 눈 요기거리였다.


어찌나 열중했는지 TV를 싫어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날 내쫓으시고는 ‘만화방에 가서 살아라.‘고 하셨다.


날아다니며 복수혈전을 거듭하다, 결국에는 정의의 이름으로 복수를 하거나, 악의 무리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과정들이 어찌나 통쾌했던지 말이다.


게다가 평화를 되찾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 외에도 늘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서사는 주인공, 영웅의 수련과정, 힘의 원천과 원리의 이해, 극기, 이런 것들이다.


수련과정에서는 하나같이 매일 아침 멀리서 물을 길어오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왜 하는지도 모른 채 지루한 동작들을 반복하고, 도전적 과제 수행을 통해 훈련하며, 영문도 모른 채 기본기가 쌓이고 쌓이면 한 단계씩 성장을 하다 성장의 한계를 느낄 때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고뇌와 잠 못 드는 밤을 지세다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불현듯 힘의 원천과 발현의 원리에 번뜩 눈이 뜨이게 된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차분히 더욱 정진하여 대가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악의 무리를 제압한다. 악의 무리는 영웅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무너지며, 복수를 꿈꾸며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이러한 악의 무리를 연민으로 바라보며, 복수보다는 민중과 함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선택하게 된다.


영웅을 중심으로 한 주변인은 스승과 제자, 조력자, 후원자로 보통 이루어져 있다. 물론 악의 무리들은 기본이며, 이 무리들이 갖는 특성은 후안무치, 부정부패, 매관매직, 폭정, 존엄의 파괴, 서열 같은 것들이다.


영웅, 정의의 이름으로~


스승은 엄히 가르치되 실패를 용인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응원하며, 절대적인 존경의 대상이며, 결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던져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조력자는 스승의 보호와 제자(영웅)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수련과정 전체를 지원하며, 가끔 제자의 흔들리는 마음을 감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절대적인 존중과 믿음, 지지를 보내주는 존재이며, 악의 무리에 의해 무너진 세상을 되찾고, 스승의 정신을 이어받아 복원하는데 헌신한다.


후원자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꽤나 명망 있는 존재로서 스승의 모든 활동을 후원하되,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보통은 악의 무리로부터 정치, 군사적으로 견제대상이거나 핍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도 한다.


영웅은 보통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인내심이나 스스로를 이겨내는 마음이 탁월하다. 특히 심성이 깊고, 곧으며, 선하다. 요즘 같으면 EQ(Emotional Quality)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듯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이 좋아야 한다는 것에 다다른다.


현실에선 꿈조차 꾸기 어려운 이데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물며 공자님은 실제 정치판에 단 한 번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을 적은 책) 역시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목민심서에서 그려진 200여 년 전 조선의 하늘과 지금의 대한민국의 하늘은 가슴 아프게도 맞닿아 있어 후안무치(厚顔無恥)하고, 부정행위가 만연하며,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세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바로 모든 무협지가 다루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와 너무도 같다.


사실상 전문가 집단의 완전 붕괴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품성, 품위, 품격은 기대조차 할 수 없으며, 시험성적과 부정행위에 눈감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순으로 매겨진 품계만이 남아 승자독식과 기회주의, 각자도생만이 유효한 세상을 가속화, 공고히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겉으로 보이는 집단들만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에 불안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천박(淺薄)한 개인이 척박(瘠薄)한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가?

시스템이 척박한 것인가, 개인이 천박한 것인가?

척박한 시스템임을 모르거나, 알고도 의도적으로 누가, 어떻게 유지시키거나?

시스템과 개인의 역사성과 문화지체(cultural lag)는 어떻게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일전에 고소득, 선진국가, 번영지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은 고소득 국가, 선진국가이지만 번영지수가 소득에 비해 OECD국가의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특히 사회적 Governance 부분이 크게 취약하다.


세계 100위권에 머물러 있다.


여기엔 민주주의, 자유, 인권, 사회공동체, 투명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기본기’에 ‘Governance’를 유전자 가위로 오려 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