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민 Mar 12. 2021

영화 <미나리> : 미나리 원더풀 원더풀

우리는 모두가 <미나리>다.


정확치는 않다. '삶은 버티는 거야. 힘들고 어려워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이 비슷한 표현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배우, 윤여정의 인터뷰가 명언처럼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영화 '미나리'로 받은 해외 수상 소식과 한창 인기인 '윤스테이'의 회장님으로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낸 그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일 터다. 나또한 '꽃보다 누나'에서 육십오세가 처음이라 힘들고 어렵고 실수하고 후회하지만 또 하루를 살아내는 그녀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영화 <미나리>는 배우 윤여정이 말하는 삶의 모습과 닮았다.


큰 꿈을 안고 한국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또 그곳에서 아칸소 외지 시골 마을로 이주한 한국인 이민 1세대.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이제 막 꿈과 열정으로 상경한 나의 직장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치열하고 재밌게 일하지만 남는 것 없이, 낯선 서울에서 뿌리 내리지 못한 채 혼자 부유하는 것 같던 해파리 시절 말이다. "아빠는 Big Garden을 만들 거야!"라며 한껏 들뜬 얼굴로 꿈을 외치던 제이콥과 그런 그가 마뜩잖으면서도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착실히 해나가는 모니카의 모습은 과거 나의 부모님의 모습을 닮았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농사일과 가족에 대한 책임에 짓눌려 주고받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애잔함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 웃음.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지켜만 보는 큰 아이도, 몸이 아픈 막내 아이도 각자의 자리에서 불만족 스럽고 고단한 하루를 인내하고 있다.


모니카가 한계에 달할 무렵, 그녀의 친정 엄마 '순자'가 미국에 온다. 고춧가루며 멸치며 딸에게 필요한 것을 눈으로 본양 바리바리 챙겨 온 그녀의 모습이 꼭 나의 친정 엄마 같아 영화를 보는 내가 다 반갑고 울컥 눈물이 난다. '순자' 할머니는 데이빗의 말대로 보통 할머니가 아니다. 웬만한 일은 개의치 않고 힘든 내색도 없다. 물이 안 나오면 개울에 가서 떠오고, 미나리 씨는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알아서 척척 씨를 뿌려 키워낸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아픈 데이빗의 심장도 크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고, 조금 뛰어봐도 괜찮다고 독려하고, 항상 약해 걱정만 받던 아이에게 "스트롱, 스트롱 보이!"라며 칭찬한다.


순자 할머니의 여유와 배짱은 우리네 할머니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어디에 던져 놔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삶의 태도는 아마도 전후 세대 특유의 생존 방식에서 온 게 아닐까. 이민과 다름없는 피난길, 황무지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 고속 성장을 이뤄낸 경험이 그들에게 녹아 웬만한 고난과 걱정은 쉬이 넘길 줄 알고, 위급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그것이 물질이든 감정이든)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 불안한 가족에게 순자는 글을 못 읽어도, 보통 할머니와 달라도 의지할 수 있는 특별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여유가 있었던 순자 할머니가 쓰러진 후 불편한 거동에도 조금이나마 자식을 돕고자 움직였다 자식의 재산까지 다 태워 버렸을 때의 그 허망한 눈은 어딘가에서 본 할머니, 할아버지의 초점 잃은 눈을 떠올리게 했다. 망연자실한 그 표정이 대사 하나 없이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는 돌아갈 곳도 없이 늙고 병든 짐이 되고 만 희망을 잃은 자의 심경을 절절히 드러낸다.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이 식구들은 아칸소 땅을 떠나지 않았다. 모니카도 함께 힘을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마음 먹은 듯하다. "한국 사람은 머리를 쓰는 거야."라며 한국식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며 따을 파던 제이콥은 이제 모니카와 함께 요상스런 스틱을 든 미국인 전문가를 불러 우물을 판다. 이 장면이 내게는 이 영화가 왜 미국영화인지 깨닫게 했다. 이제 이들은 '미국에 온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 핏줄을 가진 미국인'으로 미국땅에 맞춰 살아갈 것임을 직감하게 하기 때문.


"할머니가 자리를 잘 잡았네." 라는 제이콥의 마지막 대사로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한동안 이 가족의 힘듦은 계속되겠지만, 서로가 있기에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미국땅에서도 뿌리를 잘 내린 미나리처럼, 그들도 잘 정착하리라 희망을 꿈꾸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떠오르는 단상은 아칸소 농장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고생의 와중에도 그들의 농장과 흐르는 음악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따뜻한 주황색으로 부서지는 햇살, 나무에 그네를 매고  온 가족의 얼굴에 피어난 함박 웃음이 이 영화의 진짜 메세지 아닐까.


삶은 어디서건, 누구에게나 고단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며 그래서 한번쯤 살아 볼 만하다.


 한편 미국서 나고 자란 비아시아계 미국인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다. 한국인에게 이 영화의 정서는 매우 익숙하다. 다큐나 책 또는 건너건너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보기도 했고, 어딘가에 터잡고 열심히 바르게 살아보려 애 쓰는 자체가 우리네 삶 아니던가. 한국인에게 절절한 공감이 크다면 미 주류에게는 아시아계 정착기라는 새로운 소재가 주는 신선함과 인류애 입장으로서의 상호 이해가 크지 않을까. 여태 서구 유럽 백인이 미대륙에 정착한 역사 영화나 흑인 노예나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많았지만 아시아인의 정서와 시각으로 당시의 미국을 바라보는 건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십자가를 맨 아저씨라던가 엑소시즘, 교회 부흥 등의 요소는 미국식 위트로 그 시대를 떠올릴 수 있는 요소로 다가올 듯하다. 아 진짜로 그런 것들을 믿고 유행이던 시기가 있었다구. 라떼시절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