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라떼에 반샷 추가요. 우유는 오트밀로, 얼음은 반만. 부탁드려요!
만날 때마다 늘 친구는 커피 주문에 진심이었다.
야, 이 정도면 거의 실험실인데? ㅋㅋㅋ 저는… 그냥 아아요.
마흔이 될 때까지,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냥”
취향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았다.
게다가 그 친구는 주문한 커피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혹평을 했다.
야, 여기 너무 별로야. 얼음 분명히 반만 달라고 했는데, 이것 봐. 음악도 너무 시끄럽다. 어후 다신 안 와.
친구가 내민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음 몇 알 더 들어간 걸로 이렇게까지 화가 난다고?’
하지만 그 친구는 커피가 마음에 드는 날이면,
여기 커피 너무 잘한다고. 의자도 편안하고, 분위기 마음에 쏙 든다고.
기억하고 다음에 또 그 장소에서 약속을 잡았다.
이제야 알았다. 그게 그 친구의 자기 취향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요즘 SNS에는 취향 이야기가 가득이다.
‘취향 존중해 주세요.’ ‘취향 저격이네.’
다들 취향이 확고하다는데, 내 취향은 뭐지? 싶을 때가 있었다.
나도 막연히 취향이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어느 날, 혼자 커피숍에 간 날.
늘 먹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고 새로운 걸 먹고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뭘 시켜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뜨거운 건 싫고, 우유는 좀 부담스럽고…
메뉴판 앞에서 하염없이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익숙한 아아를 들고 나오면서,
그런 내 모습이 문득 너무 별로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고민하다가 기껏 고른 게 또 아아.’
이 나이 먹도록 내가 확실히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니.
아무거나. 다 좋아.
나는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는 점에서 유연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건 나한테 아무 선택권도 주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커피 주문에 진심이었던 그 친구를 떠올리며,
나도 내 취향을 알아가 보기로 했다.
전에는 컵을 살 때 아무 컵이나 샀지만,
지금은 컵도 예민하게 고른다. 왠지 모르겠지만 입 닿는 부분이 두꺼우면 커피 맛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커피는 약간의 산미가 있는 원두가 좋다.
고소한 맛보다 깔끔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좋다고나 할까.
소품은 쨍하지만 과하지 않은 것, 포인트 색상이 있으면서 디자인은 화려하지 않은 것이 좋다.
음악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노래가 좋다. 다른 일을 할 때 방해가 안되지만, 공간의 분위기가 더해지는 느낌.
책을 사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전자책이 진짜 편해서 좋더라.
드디어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내 취향을 알아가고 있다.
예전엔 주어진 걸 먹고, 들려오는 걸 듣고,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보고, 선택한다.
그건 단순한 호불호가 아니라, 내 일상을 좋아하는 것을 채우려는 노력 같은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설픈 취향도, 뒤늦은 선택도 뭔들 어떠한가.
조금씩 취향을 찾아가는 내가 너무 마음에 든다.
오늘도 크게 외쳐야지.
저는 산미 있는 원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오늘은 매콤한 국물 먹으러 갈까?
비로소 나의 아무거나의 시대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