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못해도 우리, 예쁘게 먹어요

하루가 그릇 하나로 달라질 수 있다면

by 해사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주부 생활이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요리는 내게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굶고 살 순 없으니, 필요한 만큼은 한다.

다만 나는 요리를 오래 하는 것이 싫다.

재료를 다듬고 볶고 끓이고 굽고… 한 시간이 넘도록 불 앞에 서 있는 삶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들인 시간에 비해 맛이 그리 좋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릇을 좋아한다.

옷을 고르라 하면 피로가 몰려오지만 그릇을 고르는 일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값비싼 그릇은 없지만, 단아하고 정갈한 스타일의 도자기 그릇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남편은 내가 새 그릇을 들일 때마다 “취향이 조선시대네”라고 놀리지만, 그 말이 싫지는 않다.


한 번에 많은 그릇을 사지는 않는다.

이번 달 운동을 조금 성실히 했다면 하나,

아이 돌보느라 고생이 심했다면 또 하나.

자꾸 이유를 붙여서, 천천히, 아주 소심하게 모은 그릇들이다.


내가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군가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아이들일 때도 있고, 남편일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밀키트를 데워 먹을 때도,

라면 하나 끓여 먹을 때도,

배달 음식을 먹을 때조차 나는 꼭 그릇에 담는다.

그릇에 음식을 옮겨 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평범했던 식탁이 갑자기 레스토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지 그릇 하나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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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우용녀 님의 유튜브를 봤다.

그분은 매일 호텔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 자신을 가꾸고, 밖으로 나가고,

예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라니.

그 자체가 나를 대접하는 시간이 아닐까.


호텔 조식은 못 가더라도 그 마음은 나도 배우리!


정신 없는 아침 시간.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허겁저겁 등교시키고 나면,

식탁은 엉망이고, 남은 음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정도.

예전의 나는 서서 그 음식들을 대충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한 끼 때웠다




요즘은 다르다.

아이들이 남긴 계란 한 조각, 빵 몇 조각을 잘 모아서

자연스러운 문양이 매력인 납작한 접시에 정갈히 담는다.

먹다 남은 채소지만, 샐러드를 만들고 꽃을 닮은 오목한 그릇에 담는다.

물론, 커피 한 잔도 빠지면 안된다.


그릇을 꺼내고 음식을 담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설거지는 조금 늘었지만, 아깝지 않다.

그 5분으로 내 하루가 달라졌으니 말이다.


요리는 못해도, 나를 정성껏 대접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안다.

하루의 시작이 조금 더 단정해지고 정성스러워졌다.

작은 그릇 하나가 일상을 바꾸고 있다.

그릇 덕분에, 오늘도 시작이 좋다.




** 오늘의 그릇 **

- 문도방 사각굽접시 :

빵 하나도 멋스럽게 보이게 하는 마법의 접시.

네모난 모양에 각이 없고, 백색이지만 따뜻한 느낌.

우리동네 맛집에서 배달한 잠봉뵈르를 올렸다.



- 킨토 세피아 머그 270ml :

브라운 색상이 매력적인 킨토의 인기 라인

커피를 담으면 커피의 색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느껴진다.

케멕스로 내린 커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