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안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젊을 땐 무조건 여행을 다녀야 해.
낯선 곳에 가야 시야가 트이지.
결국 남는 건 경험이야.
여기저기에서 여행이 중요하다고 난리다.
그래서 나도 그래야만 인생 잘 사는 건 줄 알고 부지런히 해외여행을 다녔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떠난 그날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나는 뭔가 ‘성장하는 사람’ 같았고 솔직히 좀 있어 보였다.
낯선 길을 헤매고, 어설픈 언어로 주문도 해보고,
친구들과 인생사진도 찍었다.
유적지 앞에서는 "우와~"이런 말도 해줬더랬다.
그때 여행의 매력은 단순했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
늘 보던 거리와 익숙한 시간에서 빠져나와
처음 보는 길, 처음 듣는 언어, 처음 먹는 음식.
그 낯섦은 나를 잠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그 새로움에는 피곤함이라는 대가가 늘 따라왔다.
출발 전부터 일이 많다.
항공권, 숙소, 입장권, 일정 계획, 교통, 날씨…
옷도 새로 사야 하고, 짐도 몇 번이나 다시 쌌다.
새벽부터 공항 가느라 정신이 없고, 도착하자마자 길 찾느라 진이 빠졌다.
치안이 불안한 밤거리, 예상보다 지저분한 숙소, 게다가 각종 결제 알림들.
근데 가장 피곤한 건 따로 있다.
'이 여행에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
이만큼 시간과 돈을 썼으니, 뭔가 느껴야 한다.
‘어서 감동해라. 지금이야.’
그렇게 나는, 억지로 감동하고 억지 깨달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마다 이게 진짜 힐링인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준비 과정조차 설렘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피곤한 일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수고를 떠안는 것.
여행은 여전히 멋졌지만, 그 매력이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할 만큼 강한지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멀리 떠나는 대신, 버스를 타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가서 걷기도 하고,
친구와 추억을 만들고 싶을 땐 비행기 대신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했다.
그 순간들도 충분히 좋았다.
아니, 어쩌면 더 편했고, 더 내 삶에 가까웠다.
저는 여행 별로 안 좋아해요.
어느 날, TV에서 한 배우가 말한 이 말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아, 그렇지. 여행을 안 좋아할 수도 있는 거였지.
지금 나는 여행을 자주 하지 않는다.
대신, 익숙한 일상에서 가끔 낯선 길을 걷는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수업을 듣고,
친구와 새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새로움은 꼭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찾으려 애쓴 그 작은 시도들이,
결국 내 삶의 경험이 되었다.
진짜 여행은, 잠시 내 일상에서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의미를 애써 찾아 떠나는 여행보다,
의미를 만드는 하루를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