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습관

퇴사 후 변해야 하는 것

by 임다희

퇴사 선언을 하고 하니 몇 년간의 체증이 떠내려 갈 만큼 마음이 후련했다. 그러나 이 후련함도 잠시.


월급 없는 삶에 대해 또다시 시뮬레이션한다. 매달 고정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확인하고, 내가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항목들을 살핀다. 이번 기회에 미니멀리스트 한 번 해봐? 거의 실현 불가능한 상상을 해보면서.

다행히도 예전과 비교했을 때 나의 소비 스타일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충동구매를 일삼던 옷과 신발 쇼핑에 이제는 별 관심이 없어졌다. 그 옷을 꼭 입어야 하고 그 신발을 꼭 신고 싶은 욕망이 잠잠해졌다는 게 좀 신기하다. 매번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사면서도 조금씩 다른 디테일을 운운하며 그 옷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곤 했는데 마법처럼 흥미가 싹 사라졌다. 일시적인지 아닌지는 몇 년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무튼 의(衣)에 대한 욕망 불씨는 점점 사그라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조금 우려하는 게 있는데, 바로 식(食) 쇼핑 습관이다. 나는 쉽게 배달 앱을 연다. 다양한 메뉴와 화려한 음식 사진에 금세 매료되어 이 중 꼭 하나를 꼭 고르고 만다. 식탐에 눈이 먼 하이에나처럼,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처럼, 나의 충동과 집착은 이미 하나가 되어 최소 주문금액에 맞춰 (혼자 먹기에 과한 양의) 음식을 주문하고 만다. 배달비 몇 천원이 아깝다가도 이 편리한 서비스를 외면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집에서 불과 1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배달시키는 지경이니 편리함에 기대어 나의 게으름 지수는 한 단계 이상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할진대 점점 둔탁해지는 팔뚝과 불어난 옆구리, 뱃살을 원망할 수 있겠냐 말이다. 퇴사하는 날에 배달 앱부터 지워야 할 판이다.



내가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장보기도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백화점, 쇼핑몰을 잘 안 가지만 대형 마트는 2주에 한 번씩은 간다. 주류 매대를 시작으로 정육, 야채, 과일, 간편식 코너 순으로 쇼핑을 한다. 분명 사야 할 것들만 장바구니에 담겠노라 결심하지만, 계산대 앞에 줄 서있는 나의 쇼핑 카트에는 그 외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왜 마트에 가면, 필요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이 그렇게 잘 보이는 걸까? 이런 식으로 발굴한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생각한다. 이러려고 돈 버는 것 아니냐며 소박한 사치로 합리화한다. 잊고 있던 욕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꼭 잡겠다는 쓸모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정도는 사치도 아니라며 요즘 말로 플랙스를 하는 것이다.



1인 가구에다가,
삼시세끼 챙겨 먹을 것도 아니면서,
뭘 이렇게 까지 산거니?


그렇게 쓸어 담은 이것저것을 집으로 가져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냉장고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꾸역꾸역 채우고 나서야 당분간 배달 음식 금지를 선언한다. 나의 치명적인 문제는 하루 사이에 이 선언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요리 메뉴를 떠올리며 하나씩 담은 재료들이 냉장고에 넘쳐나는데도 또 배달 앱을 켠다는 것은 나는 식탐만 있을 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란 걸 확실하게 말해준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불확실함으로 나를 던지기로 한 이상 생존 전략 차원에서 소박한 사치 따위의 습관은 고쳐야 한다. ~해야 한다 류의 동사를 선호하지 않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게 뭐라고. 비장함 옆에 떨림이 다소곳이 붙어 있는 것만 같다.



고치고 싶은데 잘 고쳐지지 않는 나의 습관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렸다. 그 습관조차 나의 인격 같고, 오랜 시간 내 안에서 머물면서 자리 하나쯤은 확고하게 차지한 그런 존재 같았다. 웬만해서는 꿈틀거리지도 않고, 관성의 법칙과 중력의 힘을 그대로 따르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내 안의 아이 같았다. 의지와 결심만으로는 이 습관을 더는 고칠 수 없겠다고 결론 내린 순간 나는 내가 측은해졌다. 이럴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냥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나를 밀어 넣으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 기회에 장보기 습관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