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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May 26. 2022

5. 노동은 타일이요, 타일은 노동이로다.

우리 집을 구하러 온 나의 구원자, 할아버지 어벤저스

*  본 일기는 주로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느꼈던 1인 가구인의 고난기가 담겨 있을 뿐, 셀프 인테리어의 공정 팁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께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함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의장'은 여의도 셀프 인테리어 장인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 단어를 지어주신 노난 작가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집에 들어오고 난 후, 가장 고치고 싶었던 것은 바로 1) 욕실 2) 부엌 3) 신발장이었다. 

인테리어 플렉스의 끝은 타일이라 했는데, 세상에 세 군데 모두 타일을 박아 버려야 하네. 


순서대로 1) 처참한 욕실 2) 난해한 신발장 3) 더러운 부엌


타일을 시공하기 위해선 먼저 을지로에 가서 원하는 타일을 골라야 했다. 

셀프 인테리어 하기 전엔 몰랐지. 타일을 판매하는 업체가 따로 있고, 시공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욕실 벽타일, 욕실 바달 타일, 신발장 타일, 부엌 타일 등 바꾸고 싶은 곳은 모두 실측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타일을 샀을 때, 타일 사이즈별 구매 개수를 역산할 수 있다. 

만나서 반가웠고, 다신 보지 말자. 


그렇게 타일을 구매한 뒤, 업체 사장님이 시공업자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해서 27일로 시공 일정을 잡았다.

참고로 타일 구입과 시공에 들어간 비용은 아래와 같다. 

타일비 1,320,000원 + 시공비 1,600,000원 = 총비용 2,920,000원 


-

대망의 디데이. 

아침 9시부터 건장한 체격의 할아버지 네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양손에 각종 공구를 들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욕실, 신발장, 부엌 시공을 요청드.."


"사모님 잠시만. 어이 김 씨는 부엌으로 가고, 최 씨랑 박 씨는 화장실로 가. 그리고 사모님은 이따 점심에 우리 콩국수 하나만 시켜줘요."


오. 부탁을 드리기도 전에 모든 걸 진두지휘하는 대장 할아버지였네. 

이것이 진정한 K-빠름, K-효율이구나.


대장 할아버지는 요즘 말로 치면, 그야말로 디렉터였다. 입에 연초 하나를 무시곤, "어이 김 씨 좀 더 왼쪽", "어이 박 씨 그거 살살 들어야 해." 등 다른 할아버지들을 진두지휘하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욕실
시뻘건 타일을 얼른 덮자. 내가 고른 유럽발 발리 그린 스톤 타일로. 
더러운 주방은 정사각형 흰색 타일로 덮어버리는 중. 


반나절 정도 지났을까. 

할아버지 어벤저스 군단을 위해 콩국수를 주문했다.


땀에 흠뻑 젖으신 모습을 보니, '진정한 땀 흘려 번 돈이란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콩국수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최 씨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타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하우를 배워왔고, 박 씨 할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시다가 타일 일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했다. 각자 살아온 삶은 달랐지만,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같았다. 


"우리는 피땀 흘려 일해. 돈도 얼마나 잘 번다고! 일할 땐 최선을 다 하고, 쉴 때는 아주 푹 쉬어버려."


부동산이며 비트코인이며 노동의 가치가 터부시 되는 이 천박한 세상에서 개개인의 노동 주도권을 가진 할아버지들이라니, 정말 멋있네. 

일에 대한 자부심은 여기서 나오는구나. 


할아버지들은 콩국수를 후루룩 드시고는 다시 연장을 쥐고 타일을 붙이셨다. 

그리고 완성된 나의 집. 


최소 30년은 점프업한 화장실
이제야 싱크대를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엌


할아버지 군단, 정말 어벤저스가 맞았네. 

우리 집을 구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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