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동의 받기와 엘리베이터 보양재 작업도 인테리어의 과정이었군요?
* 본 일기는 주로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느꼈던 1인 가구인의 고난기가 담겨 있을 뿐, 셀프 인테리어의 공정 팁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께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함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의장'은 여의도 셀프 인테리어 장인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 단어를 지어주신 노난 작가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인테리어는 '별의별, 이런 것까지 해야 돼?'를 계속해서 깨닫는 과정이다.
그리고 셀프 인테리어는 그러한 '별의별' 것을 '셀프'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아파트 인테리어는 공사 외에 아래 사항들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1. 공사 안내문 부착
집 호수와 언제부터 언제까지 공사를 할 것인지 공정의 과정은 반드시 적어야 한다.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는 필수며, 강한 소음이 예상되는 날도 적어주면 더 좋다.
2. 입주민 동의서
베란다를 확장할 경우, 아파트 입주민의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구청에 행위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파트의 따라, 베란다 확장을 하지 않아도!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입주민 동의를 세대의 절반 이상 받아야 하는 곳도 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구?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3. 엘리베이터 보양재
보양재가 뭐냐구? 보양재란 이렇게 생긴 것이다.
인테리어를 시작하면, 공사에 필요한 자재, 페인트, 각종 기구 등을 엘리베이터로 옮겨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승강기가 긁히거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보양재 작업을 해줘야 한다.
44살이나 나이를 먹은 우리 아파트의 경우,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들이면서 많은 부침이 많았나 보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인테리어 전에 세대의 절반인 80여 개의 입주민 동의와 각서를 써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참고로 이곳은 인테리어 공사를 너무 많이 해서 입주민들의 동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귀띔해주셨다.
잔뜩 겁이 난 나는 집에 가자마자 우선 엘리베이터와 1층 안내판에 붙일 '공사 안내문'을 쓰기 시작했다.
00부터 00까지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웃분의 소중한 휴식시간이 방해되지 않도록 소음, 분진 등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음 아니야 아니야. 조금 더 구구절절해야겠어.
00부터 00까지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코로나 시기에 공사를 진행해 불편함을 드리는 점 죄송합니다. 이웃분의 소중한 휴식시간이 방해되지 않도록 소음, 분진 등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까지 덧붙이자.
공사 안내문도 완료했으니, 80여 개의 입주민 동의만 남았다. 이 코로나 시기에 무턱대고 방문하여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 구구절절 80개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진심은 연필로 전하라지만, 무턱대고 이 쪽지만 줄 수 없지. 쪽지가 스팸으로 느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물을 해야겠다.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핫 아이템이 뭐지?
마스크? 아니야. 이건 너무 식상해.
종량제 봉투? 너무 좋은데, 혹시 쓰레기를 준다고 생각하실까?
먹을 것? 아냐, 괜히 탈 나면 어떡해.
신혼부부, 어르신, 1인 가구 가리지 않고 모두 사용할 법한 선물이 뭐가 있지. 오랜 고민을 한 끝에 내가 고른 선물은 이케아 반찬통(식품 보관 용기) 세트였다.
대망의 당일, 난 전략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가장 집에 많이 있으면서도, 방문했을 때 기분이 언짢지 않을 시간에 방문하자. 그렇게 내가 잡은 시간은 11시. 목표는 3시간 동안 80세대 이상의 입주민의 동의를 받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층 이웃이 될 12층 입주민들을 시작으로, 1층에 사시는 분들께 구구절절 편지가 붙은 선물을 전달드렸다.
집에 들어와서 밥 한 술 먹고 가라는 할머니, 아기가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옆집, 쿨하게 동의서 사인은 알아서 해달라는 아주머니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났더니 어느새 80세대의 동의를 받아버렸네. 이 기쁜 소식을 들고 관리사무소에 달려갔다.
"선생님, 저 이제 인테리어 시작할 수 있죠?"
"동의서는 확인했고, 업체한테 공사 시작 전 엘리베이터 보양재 작업부터 하라고 하세요."
업체라뇨, 선생님. 전 제가 합니다. 당근에서 엘리베이터 보양재를 검색했더니, 누가 셀프 인테리어를 끝내고 남은 보양재 전부를 1만 5천 원에 팔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판매자 분도 셀프로 보양작업을 하셨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그분이 가지고 계신 보양재를 전부 가져왔다.
남자 친구를 불러 2인 1조로 엘리베이터 보양작업을 했다. 보양재 작업, 누가 쉽다고 했는가. 작업이 늦어지면서 저녁 6시까지 보양재 작업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낑낑거리고 있었고, 퇴근하고 오시는 주민들에게 본의 아닌 인사를 또 드리게 되었다.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보양재 작업은 무려 1시간 30분이 걸렸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이 정도면 너무 훌륭해!
다음날 타일 설치를 위해 기사님이 방문하셨는데
내게 다가와서는 한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 사모님. 엘리베이터 보양재 업체 어디에 맡겼어? 마감이 아주 엉망진창이야. 저거 한 사람 말이야. 아주 양아치일 거야. 앞으로 저런 곳에 맡기면 안 돼. 누가 보양재 작업을 저렇게 어설프게 해?"
"하하하,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