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 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차분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기분, 그 상황의 분위기는 잘 파악하는 편이지만(천성이 소심한 편이다) 사실 기본성격은 세심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심한 성향의 소유자다.
즉 소심한 성격 탓에 남 눈치를 좀 보긴 하지만 나하고 싶은데로 하느라 좀 눈치가 없는 편이랄까.
21살 때 대학을 휴학하고 힘든 가정형편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고 한 4~5년 정도 휴학연장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고, 나 또한 전공에 미련이 없었기에 미련 없이 휴학 말고 자퇴를 결정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남편을 만나 아이도 낳았는데 요즘 어디 혼자 벌어 살 수 있나?
아이 출산 1년 여정도를 빼고 줄 곧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그러니까 21살 때부터 중간에 이직 텀, 아이 출산을 빼면 40대 초반까지 계속 일을 해왔다.
30대 후반,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에서 일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릴 때는 부당하거나 업무의 효율이 떨어져 개선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스스럼없이 얘기해서 변화를 줘야 직성이 풀렸는데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아보니 그런 것들이 좀 부질없다는 생각, 혹은 해서 뭐 하나라며 자포자기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그렇게 말을 아끼다 보니 20번중에 19번은 그냥 혼자 속으로만 삭혔다.
당시에는 우울증이란 생각은 못하고 일하다 속이 답답하면 그냥 잠시 사무실을 나갔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즐기진 않는 편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차 한잔 마시거나 산책을 하는 것 밖엔 없었다.
처음엔 화장실, 그다음엔 회사 주위 골목 또는 옥상 정원을 거닐고, 그다음엔 회사 주변의 산책로나 책방을 찾았다.
오래 있을 수 없으니 10~15분 이내로 한번 바깥공기를 쐬고 들어오면 그나마도 좀 나은 듯했다.
그러다 40대가 다가왔고 10분~15분의 바깥공기로는 도저히 스트레스가 가라앉질 않게 되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복도가 지옥의 길처럼 느껴질 때쯤 마지막으로 내 경력과 연관된 회사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우울증, 공황장애 직전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우울증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아무래도 바쁜 일상 + 예능프로그램 덕이였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회사에서 돌아와서 잠깐, 또는 주말 틈틈이 시간만 나면 나는 주중이나 주말에 놓친 TV예능을 쭉 돌려보았다.
런닝맨, 전참시,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미우새, 뉴퀴즈, 각종 여행프로그램 등등
볼 수 있는 예능은 다 찾아봤다.
식구들이 또 예능 봐?라고 할 정도로 집요하게 찾아본 것 같다. 주식, 코인을 한다고 뉴스를 찾아본 적도 있었지만 뉴스는 항상 불편한 부정적인 기사도 많아 더 우울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 뉴스도 보지 않았다.
예능이 항상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능을 보며 "하하하, 앜 웃겨 죽겠어." 하는 순간 일상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거나 생각을 듣다 보면 세상에 대처하는 또 다른 시각,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미친 듯이 바쁜 일상.
출퇴근, 심지어 점심시간까지 쪼개어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우울증이 오는 줄도 몰랐다.
사무실을 들어가면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날이 많아지고 심지어 사무실 복도가 지옥의 문처럼 느껴질수록 다른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실행해보곤 했다.
유튜브, 101, 블로그, 클레 스유, 크몽, 카페 기타 등등 출퇴근 시간에 강의를 듣거나 검색을 하고 그에 따른 각종 강의 수강이나 증명서(사업자, 통판업신고증,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수입식품영업등록증에 필요한 강의수강이나 신고증을 준비)등을 준비하는 데 뼈를 갈아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날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식구들 다 자는 새벽에 조용히 코인 어플을 깔았다. 비트코인 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나이 마흔줄이 다 되가는데 오랫만에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오색찬란 수없이 반짝이는 코인어플을 보고 있노라니 첨엔 너무 놀랍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코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보니 막막했다.
그때부터 코인 관련 유튜버나 책 등을 찾고 리딩방에 들어가서 평일오전부터 주말 내내 코인에 빠져 정신없는 삶을 살았다.
한날은 애드센스로 돈을 벌겠다고 애드센스 승인 챌린지를 신청해서 한 달 동안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재킷도 벗지 않고 한두 시간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고
또 어느 날은 전자책 챌린지를 신청해 퇴근해서 집에 오면 피곤한 몸뚱이를 모니터 앞에 앉혀두고 전자책소재를 찾고 같은 조원들 글에 댓글, 의견을 달아주다 부랴부랴 아이를 씻기고 다음날 출근 준비를 했다.
어느 날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엣시에서 그림을 팔겠다고 마음이 맞는 회사동료와 속닥속닥 "우리 이따 회사 근처 00 카페에서 만나~" 하며 다른 직원들 눈을 피해 회사주위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린적도 있다.
그러다 이런저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월급이상의 돈을 가져다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하... 그래 내 주제에 지금 시작하는 걸로 돈 벌어서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겠구나. 내가 해왔던 걸로 다시 해보자'며
당시 강의비 2~300만 원짜리 구매대행, 리셀, 건기식 같은 실시간 개인 줌 강의(하루 라이브로 7~8시간씩 하는 강의들도 있음)들을 듣거나 서울에서 수원까지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달려가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 생활을 했더랬다.
그 밖에도 독서모임이나 브런치 작가승인 도전, 숏츠, 유튜브, 드로잉 관련 강의나 기록에 관련된 강의등을 찾으며 계속 가만있질 못하고 배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느라 혼자 바빴다.
그래서 내 안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우울증 증상을 채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었던 듯하다.
지금 나도 모르게 자꾸 한숨이 나온다면
억지로 웃을 일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거나
우울증을 느낄 새도 없게 바쁘게 지내보자.
그럼 우울증이란 녀석이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다.
나는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