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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Sep 05. 2024

몸으로 일하니 복잡하던 머리가 단순해졌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살아보련다.

년수로 20여 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좋지도 않은 머리를 얼마나 굴렸던 것일까.


나는 일을 빠르게 쉽게 처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본 기억이 없다.  


그저 열심히,  더 열심히.

매출은 전달보다 더 많이. 전년보다 더 많이.

팀의 결속력, 지속성도 좋게 더 좋게.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도 나를 필요로 한다면 일도 많이 더 많이.


 ‘요령’을 요행으로 생각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라서일까. 그런 일머리 일요령과는 담쌓고 지낸 것 같다.


난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서 한때는 대표의 가족분에게까지 “00 씨 그렇게까지 일해주지 마”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무식하게 일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얻은 것.

녹초가 된 몸뚱이.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고개를 좌우로만 돌려도 속은 울렁거렸고

퇴근길에 걸어오다 보면 갑자기 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적도 있었고

퇴근하던 지하철에서 스르륵 쓰러져 본 적도 있었고

회사 회식자리에서 못 먹는 술을 마시고 다시 야근하러 들어왔다 속을 힘껏 게워낸 적도 있었고

왼손 오른손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을 수가 없어 일을 쉬겠다 말한 적도 있었다.


회사를 퇴근하면 내 삶이 있어야 하는데  퇴근을 하는 순간 스위치가 꺼진다.


간간히 회사일도 모자라 집에 돌아오면 알바를 한다.

회사일과 알바에 내 하루를 바치면 내 몸을 갈아 돈과 바꿀 뿐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지

내 건강은 어떤 상태인지 내 마음은 어떤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야 내 삶에 대해 겨우 생각해 봤다.

회사를 다닐수록 이 삶이 지겹고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산책을 나오는 횟수가 잦아진다.

회사 문입구만 봐도 한숨이 나올 때쯤.


애니메이션이나 미드를 본다.  현실을 잊고 다른 세상에 빠진다.

약간 관심이 있던 드로잉이나 미싱도 배워보고 이것저것 기웃거려 본다.


하지만 현실은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삶.

아이는 점점 커가고 같이 살고 있는 친정엄마는 점점 나이가 든다.

나랑 남편도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둘이서 계속 벌고 있는데 모이는 돈은 없고

마이너스만 늘어간다.

하고 싶은 건 많고 돈과 시간은 없다.

내 시간과 내 체력을 갈아서 돈과 바꿔오는데 만족스럽지가 않다.

  

돈도 벌어야 하고 생활용품도 사놔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아이의 성장, 남편과 엄마에게도 신경을 써야 하고

나의 미래, 나의 돈벌이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정신이 산만하다.


남 밑, 월급쟁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이 아닌

내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 출퇴근, 점심시간을 쪼개 이것저것 해보다 결국

19년 차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소호 사무실을 얻었다.


그때는 내가 잘 해낼 거란 막연한 희망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일에 대한 정보나 그 일을 해내야 하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을 때라

나만의 공간이 정말 간절했다.


내 일을 하던 자투리 시간에

나의 연혁,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한 달 챌린지를 신청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대학을 휴학한 채 돈벌이에 전념했던 19년의 세월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나라는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그런 걸로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유튜브에서 블로그에서 자신만의 스토리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이 지났을쯤

나에겐 많은 경험과 빚만 남아 있었다.


1년 동안 조금조금씩 대출을 받아 강의나 전자책, 사업등에 돈을 썼고,

내가 벌던 월급만큼 생활비를 축소하지 못하고 대출로 돈을 충당했다.


1년이 지나고 아무것도 손에 남지 않았을 때

물류회사 알바를 시작했다.


돈, 소비에 대해 무지한 나는

생활비를 계속 벌어서 내가 하고픈 걸 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물류 회사 알바를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턴가 알바신청을 하면 계속 반려가 됐다.

일용직이 그만큼 필요가 없나?


회사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려서 나도 모르겠는 사장 매출 올릴 방법을 궁리해야 했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다시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너무 돌아가기 싫었다.


물류 알바현장에서는 나에게 많을 것을 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킨 일을 큰 잡음 없이 해내면 되었고

옷도 운동복에 운동화면 됐고,

출퇴근도 물류회사 차로 하면 됐고,

중간에 밥도 제공해 줬다.


20여 년을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했던 터라

몸을 쓰려니 적응이 안 됐지만

그래도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것에

단순노동을 반복하며 주어진 일만 하면 돈을 준다는 것에

덜컥 물류회사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물류회사에서 일하니 확실한 건

몸으로 일하니 복잡하던 머리가 단순해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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