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의 책

엄마의 추천도서

by Oden

'당신, 2월에 있는 처제 졸업식에 가는 거 어때. 이 참에 한국에서 가족들이랑 좀 시간 보내고 와요.'


비행기로 한국까지 14시간 걸리는 캐나다 동네에 살고 있는 나는,

남편의 배려로 올해 1월 말부터 총 4주간 한국의 부모님 집에서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결혼 한지 올해가 20년차니까, 부모님과 한 집에서 정말 오랜만에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친정 동생은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정말 어렵게 오랜 박사과정을 마쳤고, 아주 오래전 비행기 타고 내 졸업식에 와 주었던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남편과 사춘기 두딸을 캐나다에 남겨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국에 온 나는, 그야말로 4주간 엄마밥 먹고 뒹굴거리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엄마랑 사우나도 가고, 대형서점에도 가서 책구경도 했다. 당시에 한창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으로 한국이 떠들썩했던 때라 해외에선 구하기 힘들었던 한강 작가의 책을 이번에 꼭 사가겠노라 다짐했었다. 평소 책을 사랑하는 엄마의 방에는 이미 책 <소년이 운다>가 있었고, 처음 며칠간 시차적응을 하며 새벽에 깨어 있었던 나는 먹먹한 마음으로 며칠만에 그 책을 다 읽었던 차였다.


서점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고르던 나에게 엄마가 손수 골라오신 책 세권을 내밀었다.

'인생에서 꼭 읽으면 좋은 책 세권을 고르라면, 엄마는 이것들을 추천하고 싶어. 캐나다에 이 책들 없지? 엄마가 사줄께 가져가.'

사실 이전의 한국 방문 때마다 터질 것 같은 이민가방에 책 몇권씩 추천하며 넣어 주셨던 엄마였다. 아이고, 여전하시네..라는 생각과 함께, 저 책들은 또 몇 년 후에나 내가 펼쳐보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가족 누구도, 심지어는 엄마 본인도 엄마가 몹쓸 병에 걸려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요즘 소화가 좀 안 되네..라고 웃으며 집 앞 내과에 가서 약 좀 타 올께라고 하는 엄마에게, 뭘 드셨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꿈만 같던 휴식의 4주를 보내고 다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을 때에도, 20일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올 줄 상상도 못했다.

갑자기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한국행 비행기에 탔었을 때에도, 엄마가 2주 후에 돌아가실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진짜 꿈 같은, 현실 같지 않은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캐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문득 탁자 위에 있는 책들을 보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주신 세권의 책. 엄마와 닿고 싶은 나는, 마치 엄마의 유언같은 그 책들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한다. 엄마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여기 있겠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그리고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앞으로 나에게 엄마늘 대신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줄 것 같다.


갑자기 이렇게 내 인생에, 아프고 소중한 책들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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