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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Apr 21. 2024

바람아, 내 마음을 전해다오.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떠나보내는 자의 역할이었던 때보다, 떠나는 자의 역할이었던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10살 때, 대전에서 금산으로 전학을 갈 때도, 대전 친구들을 떠났던 것은 나였다. 스무 살에 대학을 진학하며, 고향 금산을 떠났던 것 역시 나였다. 스물일곱에 호주로의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며, 한국을 떠났던 것 역시 나였다. 서른넷, 5년을 다닌 정든 회사를 떠났던 것도 나였다.



점쟁이 아주머니들은 매번 내 인생에 역마살이 가득 끼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직업을 고르면 나와 참 잘 어울린다고 하였다. 공무원과 교사는 몇 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옮겨야 하니 그런 공무원의 근무 시스템이 나의 역마살을 보완해 줄 것이라 하였다.

점쟁이 아주머니들이 용했던 건지, 아니면 점쟁이 아주머니들의 말이 저주가 된 건지, 지금까지도 나는 참으로 많이도 떠돌았다. 여러 어른들의 행성들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소행성에 남겨진 장미보다, 소행성을 떠나는 어린 왕자의 마음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홀로 남겨진 장미의 슬픔과 외로움, 쓸쓸함을 몰라서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행성을 떠나야만 하는 어린 왕자의 그 먹먹함과 죄책감에 나는 더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는 자의 마음보다, 떠나는 자의 마음과 역할에 더 익숙한 사람이니까…..



요 며칠, “그대 있는 곳까지"라는 번안곡에 빠져 있다. 원곡은 <Eres tu 에레스 투>라는 스페인어 노래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상투스라는 국내혼성팀이 대학가요제에서 불렀던 번안곡 버전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이들의 노래 가사는 아련하다 못해 가슴이 먹먹하다.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오늘에서야 나는 어린 왕자를 떠나보낸 장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대가 있는 곳까지 “의 가사를 아래에 적어본다.




“그대가 멀리 떠나버린 후

이 마음 슬픔에 젖었네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 바람아 너는 알겠지


바람아, 이 마음을 전해다오

불어라 내 님이 계신 곳까지

아아~ 바람아, 우우우우우~

그댈 잊지 못하는 내 마음 전해다오

바람아 불어라,우우우우~

내 님이 계신 곳까지”

- 상투스의 번안곡,  <그대가 있는 곳까지> 가사 중 일부.


https://youtu.be/4FrEuOGCDm8?si=EhGpIZxpoDJ4hMKu





없다. 하나도 없다!

전화도, 편지도 없다!

이메일도, 메신저도, 영상통화도 없다!

사랑하는 나의 그대에게, 못 다 전한 나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다. 나의 이 처량한 마음을 바람에 실어 보내면, 나를 가여이 여긴 바람이 나의 이 처량한 마음을 왕자님께 고이 전해주려나?



“왕자님, 왕자님께서도 그곳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아니, 사실 저는 왕자님이 떠난 뒤로 한 시도 잘 지냈던 적이 없었어요. 이 가벼운 산들바람에 당신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이 온전히 잘 실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바람에 저의 마음과 향기를 함께 실어 보내드리오니, 혹여나 왕자님 계시는 곳에까지 이 바람이 전하여지셨다면, 그리하여 왕자님 계시는 곳에 저의 마음과 저의 향기가 전하여지셨다면, 제발, 부디,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아아~ 바람아, 우우우우우~

그댈 잊지 못하는 내 마음 전해다오.

바람아 불어라, 우우우우~

내 님이 계신 곳까지!






아, 어느덧 4월의 중순이다.

정원의 장미 줄기에 꽃봉오리가 하나씩,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장미의 향이 정원 가득 그윽히 퍼지기에는 아직은 조금 이르기만 한 계절이다.

그럼에도, 4월의 이 완연한 봄바람을 타고, 은은히 전해지는 이 아련한 꽃향기는, 어느 누구의 서글픈 옛이야기더냐.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이 알 수 없는 향기는 대체 어느 누구의 입김이라더냐.


아! 이럴 수가! 혹시, 이 향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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