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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원 Mar 24. 2020

갑자기 찾아온 휴식을 대하는 마음

세계가 하루빨리 안정을 찾길 바라며...

3월 초 보스턴에선 Harvard와 MIT는 캠퍼스를 닫고 수업을 온라인 형식으로 전향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이 소식을 듣고, 박사 과정을 함께 하는 동료이자 피아니스트인 친구와 점심을 먹던 어느 날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코로나 사태를 우려하던 중, 문득 다음 달 말에 잡혀 있는 우리의 연주가 떠올랐다. 서로 프로그램 선곡이 대박이라며 자화자찬하며 기대하고 있던 연주회였다. 바르톡, 쇼스티코비치, 시닛케의 곡으로 구성되어, 20세기 각 작곡가의 선명하고 생생한 개성이 돋보이게 해주는 반면, 민속 음악의 영향이 바르톡과 쇼스티코비치의 곡에 통일성을 주었고, 모던하기만 한 프로그램에 네오 바로크 스타일의 시닛케의 곡은 신선한 흐름의 전환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럴 일 없겠지만 만~약에 우리 연주도 캔슬되면 어떡하지?" 현실성이 없는 질문이라 진지하게 물어보긴 애매하다는 듯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때만 해도 안일했었다. 하긴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은 연주였기 때문에 그때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걱정 없이 대답했다."에이, 설마."


점심을 먹고 나와서 풍경은 평화로웠다.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이 도시를 곳곳 예쁘게 비추었고 쾌적한 바람이 얼굴과 옷깃을 스쳤다. 길거리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몇몇의 동양인을 제외하곤 마스크 쓴 사람도 드물었다.


그리고 1시간 뒤. 설마가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새 핸드폰 알람에 다소곳이 들어앉아 있던 새 메일을 열어보니 평범한 겉모양새와는 다르게 앞으로의 연주는 모두 다 취소된다는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소식을 메신저로 전해 들은 친구는 리허설 중임에도 불구하고 칼답을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Whaaaaaaaat?'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씁쓸함이 고스란히 담긴 말을 짧게 덧붙였다. "I am heartbroken."


이처럼 취소되는 연주의 연속은 연주자 마음의 헛헛함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내 각자 다르게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 SNS를 통해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거나, 못했던 취미 생활을 한다. 이 덕분에 평소에는 뛰어난 연주와 카리스마를 보여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잉여롭게 비디오 게임을 하는 모습을 공유 해 웃음을 주며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Augustin Hadelich. 출처: The Violin Channel 인스타그램


광학현미경으로 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디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생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가끔씩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만 쉬고 싶은 날도 있었는데 이제는 당분간 그렇게 하기를 권유받고 있다. 연주도 취소되고, 자가격리령으로 휴식이 강제로 주어졌다. 이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우울감에 빠지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해질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여태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 한다.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으며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시기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자 디딤돌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모두 다시 웃는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베이킹 입문하기, 손 많이 가는 어려운 요리 도전해보기, 책 쌓아 놓고 1일 1 책 하기, 하고 싶었던 곡 모두 마음껏 연습해보기 등등..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어제 미니 오븐을 주문했다. 베이킹을 배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 한 조각 건넬 수 있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마음에 위로가 되길 바라며 멘델스존의 Song without Words를 공유해본다. 멘델스존은 말했다:

 "People usually complain that music is so ambiguous, and what they are supposed to think when they hear it is so unclear, while words are understood by everyone. But for me it is exactly the opposite. . . What the music I love expresses to me are thoughts not to indefinite for words, but rather too definite. . . . If, with one or the other of [the Songs without the Words], I had specific word or specific words in mind, I should not like to give them these titles, because words do not mean the same to one person as they mean to another."
출처: The Pianist's Craft 2: Mastering the Works of More Great Composers

사람들은 단어와 가사는 그 의미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지만 음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멘델스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어와 가사의 의미는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고 개개인마다 조금씩 해석하는 게 달라진다. 그리고 음악이란 추상적이며 명확하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극히도 명확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Songs without Words라는 곡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속에도 어떠한 말보다 이 음악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더 의미 있고 명확하게 다가오길 바란다.


Josef Gingold - Mendelssohn Song without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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