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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원 Apr 11. 2020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다

가족과 선물 같은 시간


불과 3주 전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미국에서도 스멀스멀  드러나기 시작할 때였다. 괜찮을 거라며 보스턴에 남아있을 거라는 주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간이 콩알만 한 덕분에 충동적으로 비행기를 끊었고 정신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하니 한국에 돌아와 집 천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도수도 없는 청광안경, 생애 써보지도 않은 N95 마스크, 라텍스 장갑, 그리고 모자까지 꿋꿋이 눌러쓰며 공항에 갔는데 그때는 사태가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이라 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오버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덕분에 무사하고 건강하게 한국에 도착했다.


전례 없는 이런 세계적인 비극 가운데 현재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까지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어서 가족은 방학에만 볼 수 있었고, 동생도 대학생이 되며 유학을 간 후로는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온 가족을 보기 힘들 때도 있었다. 초등학생 이후로 방학 제외하고 가족이 완전히 모여서 오붓한 일상생활 나누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온 가족이 미국에서 여행을 다니고 잔디밭에서 이웃들과 소소하게 바비큐나 새우 소금구이 같은 것을 구워 먹던 즐거운 나날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아득한 꿈만 같다.


그런데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었을 것만 같았던 풍경이 매일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방학이 아닌데도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족들의 움직임. '착착 착착' 발바닥 소리 내며 가족들을 사명감 있게 졸졸 따라다니는 우리 강아지 뽀숑이. 점심시간 즈음되면 느긋하게 냉장고에서 계란 몇 개를 꺼내 소박하게 동생이랑 밥 차려 먹는 시간. 저녁이 되면 재즈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스피커로 틀어 놓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와인 한 병을 따고 이런저런 담소 나누는 행복한 시간들. 뒤로 넘어져도 꽃밭, 앞으로 넘어져도 꽃밭인 것 같은 안정감은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란 둥지에서 비롯되나 보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기분과는 사뭇 다르니 말이다.


이렇게 방학 같은 나날들 가운데서도 온전히 그렇게 느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밀려오는 과제다. 학기가 재개되면서 박사과정의 여정도 다시 시작되었다. 여느 학교와 다름없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 DMA (Doctor of Musical Arts) 세미나라는 수업은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부터 새벽 2시에 끝난다. 하루 끝에 눈이 감기지만 얼그레이 차를 한잔 끓이고 시작한다. 비록 소량이지만 카페인과 향긋한 얼그레이 향이 잠을 깨워줄 수 있길 바라며... 옆에는 우리 강아지 뽀숑이를 앉히고 시작한다. 이렇게 포근한 환경 속에서 수업을 듣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되지만 이점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이 순간이 추억이 될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겹겹이 쌓인 여러 색깔이 보여주듯 첫 세 마디에도 엄청난 양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이번 주 세미나에서는 Post Tonal Theory (무조음악)를 다뤘다. 고전주의 작곡가는 청중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에 집중했고 낭만주의는 작곡가는 주관적인 자신의 감정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면 Post Tonal 작곡가는 수학을 이용해 음악이 체계적인 통일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순전히 수학적인 틀 가운데서 작곡을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다시 느끼고 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보이는 디테일에 존경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단지 이론을 적용하는 것을 뛰어넘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만한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더욱 큰 의미를 예시하는 수단으로 만든 작곡가는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Post Tonal Theory에 온통 정신을 뺏겨있다가 브람스가 듣고 싶어 브람스의 현악사중주 2번 a minor을 틀었는데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 되던지... 겨울일 땐 여름이 그립고 여름일 땐 겨울이 그리운 마음 같다. 현대 음악을 공부할 때는 그 자체의 특별함을 느낀다. 수학적인 이론이 만들어내는 음악적인 조화는 놀랍지만 계속 듣다 보면 조성이 있는 음악을 갈망하는 마음이 커진다. 듣기만 해도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사우나에 들어간 것 마냥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브람스의 곡처럼.


우리 상황에 대입해보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답답함과 우울함이 생기기도 하지만 나중에 이 모든 게 안정되면 반대로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수도 있는 것처럼....


옆에서 곁을 지켜주는 뽀숑이. 뽀숑이 도 졸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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