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능소화나무 절단사건
한 때 잘린 능소화나무 사건으로 유명했던 동네를 다녀왔다.
일부러 찾아갔던 것은 아니다.
지역 교육청 초청으로 시골의 작은 학교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 동네에 그 능소화나무가 있었다.
당시 주인은 나무가 잘린지도 모른 채 몇 달을 지냈다고 한다.
아주 깨끗이 나무를 잘라 티가나지 않기도 했고,
범인이 절단면들을 다시 서로 이어두었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잘린 상태를 눈치채기 힘들었던 것이다.
“단절”
단절은 정신 심리학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인다.
단절이 주는 안락함 때문이다.
내가 맞닥뜨리기 힘든 현실,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
아니면 특정 부류의 사람들,
단절은 그것들로부터 자유와 안락함을 준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면
상황으로부터의 단절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주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단절은 다시 이어지기 위한 휴식이었을 때
보다 더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득 보다 실이 많은 관계라면 영원히 단절해야 하는 것이 맞다.)
단절의 안락함에 취해있다가
놓치고 있던 수많은 연결로부터의 생명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
완벽하게 잘려 꽃 피울 가능성을 잃어버린 능소화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만개한 능소화나무 사진출처 @2weeks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