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워집니다. 좋은 기분이.
마음의 평화.
양팔저울이 이리 기울었다가 저리 기울었다가 하는 것만큼 산만한 일이 없다.
잘 못 살고 있다는 감각이 들어오면 저울은 불행 쪽으로 기운다.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만 해도, 아니, 주위 사람들의 소식들만 해도 뒤처진다는 감각에 불안해지고 당장 뭔가를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잠에 들지 못한다.
이런 기분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분에 끌려다녔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달달한 디저트로 내 기분을 풀어줘야 한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소비를 해서 기분을 달래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기분전환은 아주 잠시고 언제나 나는 돌아올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이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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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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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식어는 체면 그 자체다.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얼굴도 말끔해야 하고, 옷도 단정하고 깔끔하게, 헤어스타일도 정돈되어있어야 하고… 아무튼.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그러신 편이었다.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체면이 있으면 세상 살기가 쉽다는 걸 일찍 알았다.
도덕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염치보다는 자율적으로 행하는 체면. 분위기를 읽고 상황에 알맞은, 그러니까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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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잡힐 일을 만들지 않는 삶. 그게 내 모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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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게 가당 키나 한 일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다들 체면 구기는 일은 다 한 번씩 겪고, 꾸지람을 듣게 될 상황이 온다. 아예 그럴 일이 오지 않게끔 행동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극복될 일이라면 좋겠지만, 마음만으로 다 되는 건 없었다.
꾸지람 들을 일이 생기더라도, 체면 구길 일이 생기더라도 극복하겠다는 다짐도 해봤지만 다짐한다고 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남들 시선을 더 신경썼다.
남들이 보기에 안전한 말과 행동을 하고, 단정하게 입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 그게 나를 보증한다고 믿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보증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 없다. 보증해야할 주체도 없다. 간혹 허구의 상대에게 잘보이려고 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여전히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삶이 이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욕구)
많이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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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마음가짐을 확 바꾸게 되는 일이 있었다.
뭐 사건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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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 질투, 후회, 책망… 내 자아가 시도 때도 없이 떠드는 말에 매번 끌려다니는 게 너무 괴로웠었다. 그 말이 다 진실이 될 것 같았고, 과거의 후회, 현재의 불안, 미래의 절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참 무거웠다. 물론 다 잘되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무거우면 정말 몸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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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때의 누군가는 뭘 한다더라, 옆집 아들 누구는 뭘 한다더라… 이런 비교의 말을 들어도 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에게 어떤 큰 목표나 동기부여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무어라 이리저리 잔소리하고 떠드는 자아를 분리해서 관찰하게 됐다.
불안, 후회, 책망에 대해서 계속 떠드는 걸 그냥 지켜본다.
요가에서 배운다. 가슴을 열고 (실제로, 대흉근을 확장시킨 상태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반복하며 지금 하는 생각을 그냥 바라본다. 자아와 대화하지 않고 관찰한다. 판단이나 평가도 없이 그냥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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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면 왜 저러는지 좀 이해가 된다. 뭐가 두려워서, 뭐가 가지고 싶어서 그러는지 알게 되고,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집착, 합리화, 이기심, 회피하고 싶은 마음 등을 뒤로하고 그대로 맞다고 말해준다. 응. 맞아. 그렇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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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좀 느끼다 보면 흘러 보내 진다. 마음에 고인 감정이 없으니 마음이 가볍다. 떠들던 그 애는 없어진다.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고여있으면 현실의 나도 굉장히 불안해진다. 표정도 딱딱해지고, 생각도 경직되고… 하지만 흘러 보내고 나면 여유가 생긴다. 사랑으로 행동을 시도할 여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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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습을 좀 하고 있는데 인생이 참 편안해졌다. 상황은 바뀐 게 없는데 마음이 편하니까 사는 게 그리 나쁘지 않다.
가끔 드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서 흘려보내는 걸 연습하고 사니까 요즘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도 않고 하루하루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하며 웃고 지내고 있다. 이전에 자아가 떠드는 욕망, 두려움에 의해 발현된 행동이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으로 변환되어 나온다. 그랬더니 좀 여유로워진 걸 느낀다. 심리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