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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Mar 26.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기만을 넘어 쉽게 범주화하지 않는 삶


“감사합니다! 피자헛입니다.”

“시발놈아ㅡㅡ 피자가 식었잖아.”



내 인생의 첫 혼돈은 피자헛 콜센터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 피자헛 콜센터에서 알바를 했다. 시급이 500원 높아서 선택한 첫 알바가 내 인생을 이렇게 흔들어 놓을 지 꿈에도 몰랐다. 


그곳에서 나는 이유도 없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쌍욕을 먹어야했다. 정말 화장실에서 매일 울었다. 그렇게 피자헛 콜센터에서 3개월을 버틴 경험은 내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시 나는 한없이 작은 사람이었고, 20살 성인이 되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기기만


그 후 대학에 입학했다. 책, 학교 수업, 외부 강의, 동아리, 공모전, 프로젝트, 인턴을 닥치는 대로 씹어 먹으며 성장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서 의미가 피어났다. 광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주변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 열정이 있는 사람, 몰입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 나는 그 당시 열심히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자기기만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내 엄격한 잣대에 따라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멀리하고 목표에 집착했다. 사람, 시간, 돈이라는 자원을 '열심히 사는 나'라는 자기상에 투자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생태 분류학자 데이비드가 나온다. 그는 한 평생 분류학에만 연구를 몰두한 학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우생학자였다. 많은 사람들을 파괴로 몰아넣은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분류학자라는 세계관안에서 자기기만에 빠져 자기 연구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 나머지 우생학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실제로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류 분류학에 한 평생을 매진한 데이비드는 역설적으로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공헌했다. 



물고기를 죽이자.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서는 오진을 받고, 급우들과 이웃들, 부모, 나에게서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룰루 밀러_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했던 20대를 돌이켜보면, 이것저것 범주화시키고 나랑 맞지 않는다 혹은 이것은 무조건 달성해야만 한다고 판단하며 살았다. 자기기만에 젖은 데이비드처럼 나는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고 긍정적인 착각을 했었다. 


내 물고기는 '열정'이었다. 열정이라는 범주안에 나를 꽁꽁 묶었다.열정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열정이 내 자신에게 수용되는 것인지 타인에게 범주화되는 것인지 잘 구분하며 내면의 열정에 따르는 성숙한 삶에 도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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