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정말 들었어요. 진짜 대단하세요!!”
“아? 네...”
얼마 전 사이드 프로젝트 주제로 프롬 디자이너라는 커뮤니티에서 발표했다. 요즘 이직이나 취업 준비로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주말인데도 많은 분들이 와서 경청해 주셨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기획, 개발, 운영, 개선 과정과 이를 통해 느끼고 피드백한 것을 자료로 만들어 나누었다. 대학생 때 이후로 많은 사람 앞에서 눈맞춤을 하며 소통했다. 중간 중간 유머 포인트도 넣고 내가 전달하고 싶은 키 메세지도 넣었다. 빠르게 말했다가 중요한 부분에선 한 템포 느리게 말했다가 오랜만에 청중과 교감한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발표가 끝나고 Q&A 세션과 2차 뒷풀이에서 나는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깊은 곳에서 불편감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불편할까.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기 때문이다. 발표 내용도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려 하기보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과 실패 요인을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말인가. 2023년에 들을 수 있는 대단하다는 소리를 그날 다 들은 것 같았다.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수익화를 성공한 것도 아니고 창업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최근에 5차 관문에서 이직에 실패했다. 2달 동안 서류 제출, 전화 인터뷰, 과제 제출, 실무 면접, 최종 면접을 거쳤다. 내 발표 모습만 본 청중분들의 생각과 다르게 나는 요즘 구직에 실패하고 있다. 이 실패감의 찌꺼기가 남아 대단하다는 말이 그렇게 불편했나 보다.
만약, 내게 대단하다고 말해준 분들이 내가 요즘 겪는 이직 실패를 안다면 대단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단상에 올라가서 발표하는 내 모습 말고 노트북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직 준비하고 탈락 통보에 비명을 먹는 내 모습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을까.
유튜브 채널 1분 과학의 어떻게 살 것인가? 영상을 보았다. 이 영상에는 인터스텔라 영화를 관람한 스토리가 나온다. 인터스텔라의 조용하고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명장면에서 관람객 600명이 모두 숨죽이며 영화관 전체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한 정적을 경험한 것이다. 이 유튜버는 이상한 정적을 600명 모두가 스크린의 우주를 생각, 해석하지 않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느낌이라는 소통 방식에 대해 말한다.
이번에 발표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청중분들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지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내가 배운 것을 줄 수 있을지 고운 보자기를 싸매듯이 전달했다. 발표하는 순간만큼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생각하지 않고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마도 청중분들은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사이드 프로젝트에 임한 나의 진정성, 배움, 반성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최종 결과물이 대단하지 않아도 대단하다고 말해주신 것 같다. 내가 발표 도중 말을 조금 더듬거나 살짝 목이 잠긴 것과 상관없이 서로를 느끼며 공명한 것 아닐까?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닐지언정 그 공명의 순간 만큼은 대단한 것이다!
느낌이라는 관점에서 내가 최종 탈락한 회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이 사건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용 프로세스를 밟은 2달 동안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회사의 비즈니스를 보면서 열정을 느꼈다.
내가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지 배울 수 있었다.
면접을 준비하며 감사함을 느꼈다.
내가 과거에 했던 일, 프로젝트의 성과를 돌이켜볼 수 있었다.
면접을 보는 나를 통해 진정성을 느꼈다.
내가 어떤 일에 진정성을 가지는지 깨달았다.
구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느낌'에 집중해 보자고 다짐했다.
구직이 아니라 더 궁극적이고 단단한 나를 발견하는 여정으로 재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