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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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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Mar 19. 2023

서른에 경험한 카톡 이별 통보

황금은 이미 내안에 있다.

우리 안 맞는 것 같아...



갑작스러운 카톡 이별이라니 너무 당황스러워..
만나서 정리해야 서로의 성장에 더 도움되는 방향 아닐까?


글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서른 살. 나는 올해 서른 살이다. 어리다고 하기엔 너무 늙어버렸고 아저씨라고 하기엔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 미지근한 나이다. 서른을 맞아 찾아온 이번 사랑만큼은 꼭 잘해보고 싶었다. 실수투성이 20대를 지나 보내고 서른이 되어 정말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카톡 이별이라니. 상평통보 쓰던 시절에도 만나서 헤어지는 게 이 나라 상도덕 아니었나.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 안 맞았길래 이렇게 카톡 몇 줄로 이별을 통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날은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전 여자친구는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피상적인 대화만 몇 건 주고받았다. 그리고 밤 12시 카톡 몇 줄의 이별 통보를 받았다. 불과 얼마전 까지 잘 지냈는데 모두 연기였단 말인가. 노트북에 띄워진 카톡을 보고 뒤통수가 얼얼하고 심장이 인터벌 트레이닝하는 것 마냥 뛰는데 코로나 후유증 마냥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왜 헤어지는지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나는 길을 걷다가 울고 날씨가 좋아서 울고 벤치프레스 하다가 울고 샤워하다가 울고 노래 듣다가 울고 공부하다가 울다가 또 울었다. 거짓말 조금 섞으면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간 느낌이랄까. 아니 이게 뭐라고 이정도야? 싶을 정도로 진심으로 고통스러웠다. 과거 연애와 다르게 정말 너무 아팠다. 이번 이별은 뭐랄까 기묘했다.



타이레놀 먹고 정신을 차려보자.


두통 치통 생리통엔 게보린, 이별엔 타이레놀

너무 힘들어서 이별 극복법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 뇌는 신체적 고통과 관계로 발생한 상실의 고통을 똑같이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타이레놀이 이별 후유증에도 좋다고 한다. 몇 알을 먹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천천히 살펴봤다.




고스팅, 깔끔한 폭력


너를 지우고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_https://bit.ly/42lV90v



전 여자친구가 점차 연락이 안 되고 하루아침에 카톡 이별을 통보한 것은 고스팅이라고 불린다. 책 '너를 지우고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에서는 이것을 깔끔한 폭력이라고 칭한다. 이 내용을 보고 내 감정은 분노로 휩싸였다. 솔직히 속으로 쌍욕을 수백 번 삼켰다. 항상 행복을 이야기하던 친구가 이별하는 결정적 순간에 정작 상대방 행복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고스팅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의 성숙한면에 끌렸고 닮고 싶었는데 이렇게 미성숙한 카톡 이별이라니. 아아 인생이 수미상관이라지만 이것은 너무 슬픈 수미상관이다.





이번 이별의 본질이 무엇일까?




다시 타이레놀 몇 알을 먹고 차분히 생각해 봤다. 어떻게 이별이라는 게 한쪽의 책임일 수 있을까. 좋아한 것도 서로 좋아한 만큼 이별도 서로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번 이별의 본질적인 부분이 무엇일까. 어떻게 이번 이별을 의미 부여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마치 부모님의 사랑 같았다.


전 여자친구를 처음 보고 대화를 했을 때 밝고 나를 수용해주는 모습에 끌렸다. 조금 과장하면 부모님의 사랑처럼 넓은 들판을 내게 내어주었다.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보는 페르소나와 다르게 약한면이 있다. 전 여자친구는 그것을 장점으로 이야기해주고 한 없이 품어주었다.


이 사람과 사랑하면 나도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고 성장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에 빠졌다. 나 또한 이 사람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보호, 문제해결, 리더십을 발휘해주고 싶었다.


부모님 같은 사랑을 만난 나는 내 안에 있던 아이 자아를 몽땅 풀어버렸다. 피상적인 관계에서는 잘 보여주지 않았던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내 안의 모습을 한 없이 다 보여주었다. 부모를 만난 아이가 무슨 밀당을 하며 계산을 하겠는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내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말았다. 종종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다는 말을 듣는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황금은 이미 내안에 있었다.


https://bit.ly/3LzXsa9

















당신은 당신의 황금, 당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가치를 상대에게 투사하였다. 당신은 그것을 돌려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당분간 품고 있어달라고 그 여자에게 주었다. 그런 감정이 양쪽에서 모두 생겼기 때문에 그 여자는 자기의 황금을 당신에게 준 것이다. 이런 관계가 순조롭게 유지되자면 언젠가는 두 사람 모두가 각자의 황금을 돌려받아야 한다.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황금을 돌려받는 일은 언제나 환멸과 함께 한다.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기사가 아니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당신은 공주가 아니었어." 이제는 실망 때문에 황금이 와르르 소리 내며 부서져 내린다. 황금을 누군가의 무릎위에 올려 놓는다는 것은 일정 기간 동안만 가능할 따름이며, 그 때가 오면 돌려받아야 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정도로 지혜롭지 못하다. 이것이 우리 문화의 가장 고통스런 문제이다.

출처 : 로버트 존슨 '내면의 황금'


나는 그녀에게 내면을 투사했다. 밝고 너그러운 그녀를 보고 마치 잃어버린 부모님을 만난것 처럼 내 안의 황금을 모두 주었다. 그녀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황금을 맡기고 진짜 어른, 진짜 남자가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어리광을 부렸다. 그 황금을 받은 전 여자친구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요구한 부모님 같은 박애와 풍성한 편안함은 우리가 보낸 시간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게 만들었다. 연애 전에 보았던 나와 연인의 내가 너무 달라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정말 오죽하면 카톡으로 이별을 이야기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관점을 바꿔볼 수 있다. 황금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이게 이번 이별에 대한 내가 찾은 본질이다. 전 여자친구의 밝고 타인을 수용하는 긍정적인 모습은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있는 황금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안에 있는 황금을 전 여자친구를 통해 보았고 마치 부모님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 친밀했고 무척이나 그녀가 소중했다. 너무나 소중하니까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 여자친구만 있다면 나도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너무나 큰 기대를 해버렸다. 나는 그녀를 통해 본 나의 내면 모습에게 끌린 것이다.


마음속 내면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말이 있다. 20대를 되돌아보면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 일들을 통해 무엇보다 성장했고 더 건강한 어른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나의 내면도 이 과정에서 같이 성장했다. 성장한 내면이 현실에서 여자친구로 창조된 것은 아닐까? 비록 우리는 서로의 미성숙함 때문에 헤어졌지만, 이별을 통해 내 안에 있던 황금 발견했다. 이것은 곧 내가 더 성숙해지는 길목에 있다는 증거 아닐까.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or1RMjYOIvE


난 너무 많이 사고 팔렸죠 강해지고 더럽혀졌죠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I want to run away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Oh mommy please tell me What should I do 내 초라한 배가 무너져요 우린 부쩍 바빠졌었고 소중한 건 방치했었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내가 많이 울고 있군요

출처 : 김여명 '피터팬'


가만 보면, 나는 20대를 항상 외부에서 황금을 찾아다니며 보냈다.


공모전에서 1등만 하면

대기업 인턴만 끝내면

취업만 하면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 사람한테만 인정받으면


IF문을 외치며 황금을 사고 팔았다.



내면의 황금을 찾아서


서른 살. 나는 올해 서른 살이다.

서른 살에 겪은 연애는 내 20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 안에도 황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밝고, 타인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이번 이별을 통해 30대를 내면의 황금을 찾는 시간으로 살아보려 한다.

내 안의 황금을 더 돌보고 닦고 광내줘야겠다.

내 소중한 황금을 함부로 주지 말아야겠다.

황금을 주더라도 내가 황금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겠다.


타이레놀로 버틸 만큼 아팠지만, 나를 더 잘 알게 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와 시간을 보내주고 그 시간에 의미를 준 전 여자친구에게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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