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난 제주도 일주 자전거 여행
우리 부부의 첫 번째 자전거 여행의 시작은 2020년 3월,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였다. 기억을 되돌려보자. 코로나 초기 우리나라는 2020년 설날을 기점으로 확진자가 번지기 시작하였고, 대구 신천지 사태로 확진자가 급속히 번지며 전국이 공포에 떨던 시기였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피하던 시기였다. 결국 거의 모든 회사들이 비상경영에 돌입하며 장기간 휴가나 재택근무를 하는 등 비대면이나 온라인으로 일하던 시기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뚝 끊긴 손님들로 인해 업무가 줄어들자 전 직원에게 무급휴가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무급휴가 동안 집에서 빈둥거리며 책이나 보며 지낼 생각이었는데, 여우인지 사자인지 모를 아리따운 와이프가 앞뒤 없이 제주도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오자고 한다. 뜨악한 아내의 제안에 나는 또, 별로 오래 고민도 안 해보고는 그러자고 대답을 해버린다. 그때 흔쾌히 대답을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분위기 싸~~ 해~~ 지면서 티격태격 부부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그때 고민 없이 흔쾌히 대답한 것을 지금은 아주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전에 와이프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회는 위기 뒤에 숨어서 온다고 한다. 코로나라는 위기로부터 받은 무급휴가에서 우리 부부는 은퇴 후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어떻게 가꿔갈 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시작은 갑자기 닥친 코로나와 무급 휴가라는 위기에서 시작되었고, 그곳에 기회가 숨어 있는 것을 본 것은 아내였다.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아내의 제주 자전거 여행 제안은 우리 부부에겐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한마디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신의 한 수 같은 제안이었던 것이다.
2020년 3월로 다시 돌아가 보자. 첫 확진자가 나오고 2개월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나의 직장인 00 호텔은 투숙객이 제로에 가까웠다. 1,000여 개가 넘는 객실은 텅텅 비어서 불 켜진 방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불 꺼진 빌딩이 외부에서 볼 때 을씨년스럽다고, 객실 한 칸 한 칸에 그림을 그리듯이 전등불을 밝히며, 빌딩을 하트 모양으로 반짝이게 만들던 시기였다. 내가 책임자를 맡고 있던 레스토랑도 점심, 저녁을 합쳐 하루 동안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이 고작 10~20여 명이 전부였다. TV 뉴스와 인터넷에서는 연일 대구 신천지 사태 속보를 쏟아내며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집 밖을 나가는 것이 위험한데 누가 레스토랑을 찾겠는가?
결국, 회사는 특단의 대책으로 전 직원에게 일주일씩 무급휴가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34년의 직장 생활 중에 많은 위기가 있었다. 97년 IMF를 비롯하여 사스, 신종 인플루엔자, 메르스 등 코로나가 덮치기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전염병으로 위기를 겪어봤지만 무급휴가라는 특단의 대책이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휴가에 뭘 하며 지낼까 고민도 해보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반길 곳도 없었다. 그렇기에 휴가라고 해서 뭔가를 특별히 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딱히 할 것도 없었고,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그러던 중 휴가가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다. 와이프에게 무급휴가 소식을 알렸다. 회사가 어려워서 일주일간 쉬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하루가 지났을까? 아침밥 먹다가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자갸! 휴가 때 뭐 할 거야?” “하긴 뭘 해, 그냥 집에 있어야지”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니, 와이프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바싹 다가앉으며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다. “자갸! 자기 휴가 때 우리 제주도 가자! 제주도 가서 자전거 타고 제주도 한 바퀴 돌고 오자. 내가 알아봤는데 그냥 몸만 가면 된대. 자전거는 다 빌려준대. 그리고 잠은 가다가 적당한 곳 찾아서 자면 돼. 가자 제주도!” 예고 없는 황당한 제안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머릿속을 바삐 돌렸다. 좋지 않은 머리를 갑자기 빠르게 돌리다 보니 버퍼링에 버벅 버벅.. ‘제주도를 자전거 타고 한 바퀴를 돈다고, 제주도가 그렇게 작은 섬인가? 아니 몇 킬로미터인데 한 바퀴를 돈다는 거지? 그걸 며칠 만에 돈다고? 그게 가능해? 아니 그건 사이클 선수들이나 가능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버벅거리고 있는데 와이프가 또 찌른다. “내가 다 알아봤다니까, 하루에 80km 정도 타고, 중간에서 이틀 자면 돼. 그리고 완주한 뒤에 자기네 호텔 가서 하루 이틀 폭 쉬고 오자. 응?” 아내의 제안에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버퍼링에 걸린 뇌가 대답을 안 해주니 클루지 같은 대답이 입에서 먼저 툭 튀어나왔다. “그래 가자.”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제주도 가자고 대답을 해놓고 나서도 몇 번을 곱씹으며 생각해 봤다. ‘이 시국에 제주도를 가도 되나?’ ‘거기 가서 코로나 걸리면 어떡하지? 확진되어서 동네방네 뉴스에 나오는 거 아냐?’ 이런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도 결국 아내의 말에 따랐다. 결정을 하고 나니, 아내가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한다며, 나는 몸만 가면 된다고 해서 별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제주환상 자전거길 여행은 시작되었다. 며칠 뒤, 연일 터지는 코로나 속보 소식과 매일 새로운 대책들을 쏟아내는 회사 일을 뒤로한 채 우리 부부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옷가지 몇 벌만 챙긴 나는 아내를 믿고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났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2박 3일간의 긴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