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을 읽고
엄마에게 딸인 나는 일명 ‘대나무숲’ 같은 존재다.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속상한 일이 있거나,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한테만 전한다. 크고 작은 일로 소녀 같은 엄마가 아프지 않도록 잘 들어주곤 하는데, 엄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은 바로 외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어, 코로나에 걸리셨어, 우울증에 걸리셨나봐 등 할머니의 건강함을 바라지만, 나이듦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 했다.
지난 추석,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10년 전 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5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할머니는 줄 곧 혼자 살고 계셨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과 할머니랑 둘러 앉아 점심 식사를 하는데 할머니는 식사도 안하시고 내 얼굴을 한참 보셨다. 전화도 자주 안하고, 명절에 잠깐 찾아 뵙는 못난 손녀가 뭐가 그리 예쁜지.. 예쁘다 하시면서, 살이 많이 빠졌으니 더 먹으라는 이야기도 함께 했다. 그러다 툭 할머니의 진심을 꺼내셨다.
“나는 네가 항상 생각나고 보고 싶었는데.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지?”
책 <밝은 밤>에는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증조모의 외모와 ‘나(지연)’이 닮았다는 이야기, 관계가 소원해져 왕래가 없음에도 게임을 좋아하는 취향이 같은 할머니와 엄마까지. 그들은 한 공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만, 그들의 유전자가, 이야기가 그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가 떠올랐다. 엄마는 늘 할머니가 종갓집 맏며느리로 평생 고생만 하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런 이야기 때문인지 쇠약해진 할머니가 더욱 마음이 쓰였다.
요즘 엄마를 보고 있으면 젊었을 적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럴 때면 엄마한테 “엄마, 할머니랑 엄청 닮았다..”라고 할 때마다 엄마는 “할머니 딸이라서 그렇지”라고 답한다. 가끔 가족 모임에 나가면 친척 어르신들이 나에게 엄마 젊을 때랑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 3대 모녀도 우리의 유전자가, 이야기가 우리를 관통하고 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