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노자가 재즈를 만나다

[32장 투박한 정감]

by 노용헌 Mar 20. 2025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천지상합)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시제유명)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노자 도덕경 32장은 “도는 이름이 없고(道常無名), 통나무처럼 단순하고 소박하다(樸雖小)”라고 시작한다. 노자는 통나무(樸) 이야기를 자주 비유로 삼는다. 거칠고 작고 쓰임이 없어 보이는 통나무라 할지라도, 도(道)에 가깝다고 말한다. 투박하다와 소박하다는 조금 다르다. 소박(素朴)하다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수수하다’라는 뜻이고, 투박하다는 ‘생김새가 세련되지 않고 둔하다’라는 뜻이다. 투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겨움이 있지 않을까. 너무 세련된 것이 인위적이며, 인공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와비사비(侘び寂び)라는 일본 말이 있다. 화려함을 쫒기보다 간소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자연스러운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본 전통 미학을 말하는 것으로, 와비(侘)는 간소하고 한적한 정취를, 사비(寂)는 고풍스럽고 은근하게 깊이 있는 정감을 뜻한다. 오래된 도자기의 균열, 낡은 나무의 거친 결, 덧없이 시드는 꽃, 오래된 LP판에서 들리는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정감이 있고, 이런 것들에 와비사비의 미가 깃들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와비사비의 철학이 꾸밈과 표현을 제거한다는 의미에서는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지겠지만, 나는 여기서 그 투박함의 미(된장맛과 같은)를 해석하고자 한다. 투박함 VS 정교함. 단순함 VS 복잡함. 둘의 지향점은 다를 것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해석학 체계를 구축한 철학가이다. 그는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경험의 세계를 해석학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기존의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에서 ‘선입견’과 ‘권위’가 있었고, 우리의 판단이 이러한 선입견과 권위에 의지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 또한 ‘새로운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어 왔고, 항상 새로운 경험에 대해 온전한 개방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진리와 방법>(1960)에서 그는 철학에서 이해와 해석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관점과 이해를 마주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의 이해는 ‘객관과 주관이 사라진 놀이(Spiel)’이다. “이해는 언제나 해석을 동반한다.” 아마도 예술가는 이러한 해석이 자신만의 예술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의 표현은 예술가의 해석을 동반한다. <진리와 방법(Truth and Method)>. 투박함을 표현할지, 정교함을 표현할지는 예술가의 선택(Method)에 달려 있다.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은 투박한 스타일의 사진가이다. 어쩌면 더욱 정교할지도 모른다. 그는 여러 작업을 했다. 화가로서, 편집자로서, 영화감독으로서, 다양한 그의 작업세계는 시각적으로 파격적이다. 그의 스냅샷 촬영은 날것 그대로이다. 때로는 과감히 접근하기도 하고, 때로는 핀트(focus)가 나가있기도 하다. 기존의 규칙들을 벗어나려는 예술가의 작업방식일 것이다. 냉소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풍자와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그의 실험적인 형식파괴는 모션블러, 거친 입자성, 비(非)초점과 같은 것들이다. 그가 만든 첫 장편 영화 <Who Are You, Polly Maggoo?>(1966)는 그의 작업을 엿볼 수 있다. 패션사진작가 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클라인의 내면적인 면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대담한 비주얼 스타일, 불손한 유머는 그의 작품 스타일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I went to work with a vengeance—directed as much against photography which I was discovering as the city I was rediscovering. My secret weapon was a peculiar double vision half native, half foreigner. The pictures I took for the diary book were my first “real” photographs. In Paris I had started to see what I could do with a camera but this time I had a bona fide project.”

-William Klein-


킹 올리버(Joseph Nathan Oliver)는 뉴올리언스 출신의 코르넷(cornett) 연주자로, 재즈의 초기 스타일을 확립했던 인물이다. 루이 암스트롱은 자신의 스승을 우상시하여 ‘파파 조’라고 불렀다. 1908년 경부터 뉴올리언스에서 연주를 시작한 올리버는 여러 악단을 거치며 ‘킹’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초창기 재즈 음악을 들으면 정제되지 않는 날것이다. 또한 거친 녹음에서 들리는 투박하면서 독특한 감성이 묻어난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는 듯하다. 깔끔하고 정돈된 음악이 아니라, 거칠고 자유롭고 즉흥적이다. 이런 투박함이 오히려 감성을 자극한다. <Dipper Mouth Blues>(1923) 곡 제목의 “Dipper Mouth”는 루이 암스트롱의 초기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조 올리버가 아니었다면 재즈는 오늘날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루이 암스트롱-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 Dipper Mouth Blues (1923)

https://youtu.be/PwpriGltf9g?si=IVVOkrGnFMVxpMZA

이 글이 좋았다면
응원 댓글로 특별한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추천 브런치
매거진의 이전글 노자가 재즈를 만나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