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도 급이 있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면면히 돌이켜 보면 그 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 봄직 하다.
지난하고 괴로울 뿐이었을 것이라 여겼던 매 순간들이 종래엔 순간순간이 찬란하게 빛나던 것이었음을 꺠닫고야 마는 무지한 인간 군상.
그러니 차라리 지워져 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조차 언젠가는 분초 단위로 만끽했어야 했던 것이라고 후회할 날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회색으로 정지해 버린, 내게만 친절하지 않은, 그래서 나 혼자만 이 넓고 시끄러운 공간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외로움조차 사실은 충분히 씹고 뜯고 맛 보아야 할 그런 순간이라는 확신에 찬 눈빛과 제발 폐부 깊숙히 공기를 머금고 내 뱉으며 활기차고 시끄럽게 펄떡이는 이 심장의 고동소리를, 살아있음을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고.
그러나 무수히 쏟아지는 생각의 연쇄와 부추김 속에서도 나는 느리게 또 힘 없이 그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끈적한 늪의 가장자리를 찾아 겨우겨우 나아가는 몸뚱이 안에서 고요한 아우성을 칠 뿐이었다.
철저하게 망가질 용기조차 없는, 문 밖의 세상에 휘둘릴까 두려워 스스로의 빛을 가두어버린 비겁한 인간. 숨 쉬고 사는 것이 너무도 괴롭지만 썍쌕거리는 그 호흡을 스스로 끊어낼 최후의 수단마저 포기해버린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무언가.
그 정도가 내게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기억조차 까마득한 그 옛날 어느 순간, 나를 세상의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말 해준 그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가을 밤 위태로이 깜빡이는 반딧불이 보다도 하찮기 그지없는 미세한 생명의 깜빡임..
추락하는 것이 두려워 고개를 처들지 못하고 한발자국 앞의 디딤돌의 유무에만 정신없이 매달리는 애처로운 몸짓.
그리고 우연히 그 모래성을 덮쳐버린 해일과도 같은 사람이 바로 운이었다.
다소 경망스럽고 과장된 허우적거림으로 나동그라진 나를 향해 비오듯 쏟아지는 얼굴의 땀을 닦은 그녀가 내게 건넨 첫마디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