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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Oct 21. 2024

시작은 고개를 처박고 걷는것부터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어느새 들어버린 나이부터 이루어 낸 것이 없는 현실과 좁디좁은 인간관계, 불안한 직장과 쓰러져 가는 업계에 대한 걱정과 시름을 거쳐 쌓여가는 빚 줄어드는 급여, 답답한 내 방과 갈라진 장판 그 사이로 비가 내릴때마다 어디선가 생긴 누수로 인해 젖어 올라오는 시멘트물과 그걸 귀찮은듯 바라보는 무기력한 나와 그런 나를 세상에 내어놓으셨지만 아들 덕을 보고 있지 못하는 부모님. 아, 아버지는 내년에 벌써 팔순이신데 정작 나는 해 드릴 수 있는게 없구나.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뭐 이렇지.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걸까. 살아도 산게 아니다. 살면 살아진다는 어떤 드라마 대사는 좀 틀린 것 같다. 산다고 다 산게 아니다. 잘 먹지도 않는데 살은 자꾸 부는 걸까 살 찌는 것 만큼 돈이 모였다면 나는 얼마나 큰 부자가 됐을까. 내가 정상적인 인생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연명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행복한 걸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라져도 나를 찾는 이가 몇이나 될까? 세손가락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머리가 터질것 같은데 왜그러는 걸까? 벌써 다늦은 저녁이네. 내일 새벽같이 또 출근하려면 이제 누워야 하는데 출근하는 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돈은 벌어서 무엇 할까?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터지기 직전의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온 후의 밤공기는 꽤나 차가웠습니다. 후드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였다. 죄 지은 사람마냥..


터벅터벅 걸었다.  날 어지럽히는 무수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흘려가며 걸었다.


꽤 오랜시간을 걷고 나니 비로소 머리속 먼지들이 가라앉았다.


이제는 잠 잘 수 있다.


그러네 일단은, 고개를 처박고 걷다보면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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