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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Feb 18. 2024

위대한 발걸음은 아니지만

 나는 어쩌면 태어나자마자 외롭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인간은 나약한 생물이라 미완의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돌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음이 분명하지만 나고 자란 경위에 대해 듣게 된 나는 어린 시절의 내게 무한한 동정과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선천적으로 외롭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장황한 서론을 늘어 놓은 이유는 오늘 있었던 산행에 대해 얘기하기 위함이다. 외로움과 산행이 무슨 상관이냐고? 진정하고 같이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사는 동네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평소 등산을 그닥 즐기지 않지만 뭔가 "세상 밖으로 나가자!" 라는 취지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때 쯤 한번 올라가 주는것이 좋을까 싶어 이 산을 오르기로 했다. 사실 이번이 첫 여정은 아니었지만 두 번 정도 등산로 입굴르 찾지 못한 채 그냥 내려온 기억이 있다. 이 마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 때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보지 않고 그냥 포기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제 막 점심을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우중충 했다. 곧 비라도 한바탕 쏟아낼 것 같은 날씨에 잠시 망설였지만 그건 그 때 생각하기로 한다. 하여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고 미리 포기할 생각부터 하는 이 나쁜 버릇을 고쳐야만 한다. 


 동네 뒷산이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현재의 몸 상태로는 평지도 쉽게쉽게 다닐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초입부터 힘에 부치는 호흡과 줄줄 흘러 내리는 땀에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잡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였다. 머리속이 하얗게 질려 버린 것이다. 날씨 탓인지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롯이 혼자 이 산을 오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했다. 바람은 차가웠고 하늘은 어두컴컴 한 와중에 신발에 쓸려 나가는 낙엽의 외마디 비명소리만 들리는, 적막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가쁜 호흡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타인의 발자국 마저 반가울 정도였다. 


오르막과 내리막


 어떤 영화의 예고편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사람의 몸은 어떤 영혼의 감옥이 아닐까 하는 설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내 상태를 보면 이 말이 틀리지도 않은 것 같은게 내 몸은 끝없이 평화를 원하고 내 마음은 끊임없는 발전과 나아감을 원하는 상태이다. 이 둘이 너무 상충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괴로운 아침과 파괴적인 하루와 지치고 찌든 저녁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영혼은 너무도 사회적이고 진취적이다. 거친 태풍을 뚫고 밖으로 나아가 세상과 싸우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내 몸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평화를 원한다. 심신의 안정을 꾀하며 그저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맛있는 감자칩과 맥주를 즐기면서 넷플릭스나 보길 원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내 영혼은 이 육체에 갇히기 전에 굉장히 영웅적인 위치에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이 거지같은 몸뚱이를 설득해서 밖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젖은 흙을 밟고 오르자니 자꾸 미끄러진다. 이 상태로 비까지 내린다면 내려가는 일도 수월치 않을테니 이 쯤에서 내려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며 자꾸 방해를 한다. 등산로에 사람이 없는 것만 봐도 내가 고른 오늘이 산을 오르기엔 적절하지 않은 날인 것이라고 홀로 오르는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무수히도 많은 생각들이 들고 일어나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기어이 목표한대로 살고야 말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내려가서 마음껏 먹고 마실 것이라고.


 

이보시오! 여기가..후..후..후..끝이오?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를 내던지고 천천히 올라 결국 정상에 이르렀다. 새삼 등산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집 뒤에 있는 작은 산을 오르는데도 세상의 모든 번뇌들과 싸워야 하는데 전국의 산이란 산은 모조리 섭렵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머리속은 얼마나 깨끗하고 평온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기록이다. 동네 뒷산에 올랐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나인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어떤 감동이나 해냄의 도파민이 치솟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을 때웠을 뿐이다. 너무도 지루하고 무기력한 저 아래의 내가 조금 공을 들여서 이 곳까지 올라온 것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점차 내 영혼의 영향력이 내 몸을 지배하게 되어 내가 지금보다 더 능동적인 삶을 살아내고 원하는 방식으로 인생의 색깔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시점이 찾아온다면 그 때는 지금의 이 보잘 것 없는 한걸음이 시작이었노라고 말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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