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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Dec 14. 2020

식을 꼼꼼하게 쓰는 것이 만능은 아니다

그냥 끄적 10

얼마 전에 한 아이를 가르치며 경험한 일이다.


그때 가르쳤던 내용이 부채꼴의 호의 길이와 넓이를 구하는 그런 유형의 문제들이었다. 내가 푸는 방식을 보여주고 한번 풀어보라고 시간을 주었다. 잠시 후, 그 아이를 불러서 어떻게 풀었는지 체크를 해보았더니...


맨 위의 보기문제에 나온 계산식에 숫자만 바꿔서 열심히, 그리고 아주 꼼꼼하고 예쁜 글씨로 풀어서 맞추고 있던 것이었다. 당연히 답도 맞고 풀이과정도 깔끔하게 쓰여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런 식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연상이나 유추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건 이래서 이렇지? 그러니까 또 이렇게 되지?


라는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따라하는 것은 가능해도 머리 속에서 그것을 상상하고 움직이는 능력이 부족하다.


반대로 머리가 좋은 학생은 무언가를 쓰는 것을 힘들어 한다. 머리 속으로 연상과 유추가 다 끝나서 굳이 그것을 귀찮게 표현해야 하나 싶은 느낌이다. 그래서 학생의 특성에 따라서 가르치는 방향성이 조금 달라야 한다.


어쨌든 이 아이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아이에게 연상과 유추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가르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실제로 이 아이는 머리가 나쁘다기 보다는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를 그렇게 밖에 공부해 보지 못 한 것이라 조금 자극을 주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풀 때, 그림을 그리고 그 다음의 과정을 유추하게 만들게 함으로써 머리 속에서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혼자 문제를 풀 때도 식을 쓰지 않도록 하고 머리 속에서 상상을 하는 연습을 하게 했다.


어떤 분들은,


아니, 수학문제를 푸는데 식을 안 쓰면 어떻게 하냐?


라는 지적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이 학생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다. 그리고 수학에서 식을 쓴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머리 속에서 연상과정이 끝난 후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의미가 있다. 연상과정이 없는 아이에게 식을 따라쓰게 만드는 것은, 글쎄,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내 판단으론 효과가 적다.


계속 그렇게 쓰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 하고 깨우칠 수도 있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것은 아이에게 연상능력이 살아있을 경우에 아주 드물게 가능하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지 말자. 습관은 생각보다 더 우리를 옭아매는 함정이니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조금씩 연습을 스스로 하다보니, 이제 문제를 풀 때 머리 속에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 조금 더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면 곧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뭐 기다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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