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ishna Jan 06. 2021

선한 의도와 선한 결과

그냥 끄적

스승님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를 아기 예수님이나, 아기 크리슈나님이라고 여기고 가르치길 원하셨다. 사실 나도 그 말씀대로 살고 싶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내가 이미 성자(Saint)였으리라.


그 수준에 이르지는 못 했더라도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 아이들이 가끔씩 억지를 부려도 혼을 잘 못 내는 편이다. 가끔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일찌감치 내 그런 성격을 깨닫고 내 단물까지 쏙쏙 빼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학원에 내가 신던 삼선 슬리퍼 같은 슬리퍼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내 슬리퍼를 자기에게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조로 강탈해 갔다던가.


학원 끝나고 친구들과 야시장의 바이킹을 타러 가야 되는데 돈이 없다며 내게 돈을 빌려간 후, 빌려간 사실을 까먹었다던가.


사실 나는 아이들의 그런 억지를 들어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뭐랄까, 손자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어리광이나 억지를 부려도 다 들어주는 그런 느낌?


그래서 예전에 나는 아이들이 수업 도중에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하면 거절을 잘 하지 못 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알지 못 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는 것을.


그때가 언제였더라. 한 여름의 하루였을까. 한 초등학생 아이가 수업 도중에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었다. 덥기도 했고, 어쩌면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기쁘게 아이스크림을 사줬었다.


아이도 맛있게 먹었고, 그걸로 나는 만족했다.


...


다음날, 아이는 또 수업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그때 사줬던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오래전 일이었으니까. 그날 사주고, 그 다음날 못 사줬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기억나는 말은 이거였다.


선생님, 아이스크림 안 사주면 학원 그만둘거에요.


아이가 한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나의 선의가 아이를 고마움도 모르는 거지로 만들었다는 것을.




내가 대학교 신입생 시절, 기억나는 선배가 하나 있었다. 그 선배의 별명이 꺼벙이였던가.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왔으며,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하지 못 한 선배였다는 걸 기억한다.


학기초가 되면,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던 그런 시대의 일이다. 신입생들은 당연한 권리인 듯 자기 과의 선배들을 보면 밥을 사달라고 조르고, 선배들은 귀여운 신입생들에게 밥을 사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선배만큼은 신입생들에게 밥을 잘 사주지 않았다. 아닌가? 나만 못 얻어먹었었나. 뭐 하긴 내가 그런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우리 학과에서 지금 말로 표현하면 인싸도 아싸도 아닌, 그 중간의 어중간한 경계에 위치했었다. 그 선배와 했던 이야기들 중에 기억나는 것이 바로 이거였다.


나는 신입생이 밥을 사달라고 해서 밥을 사주거나 하진 않아. 하지만 정말 배가 고파서 밥을 사달라고 할 땐 사준다. 왜냐하면, 배고프지도 않은데 밥을 사주면 고마운줄도 모르고, 기억도 못 하거든.


실제로 그랬다. 나 역시 내게 밥을 사준 선배들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 하고, 그 선배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배고파서 물로 배를 채웠을 때 그 선배가 내게 밥을 사줬다면, 아마 정말 고마워하지 않았을까. 


그 선배의 말이 너무 기억에 남은 나머지, 나는 2학년이 되었을 때 신입생들에게 밥을 잘 사주지 않는 선배로 소문이 났다. 그 이유는, 내가 공공연하게 나는 신입생들에게 밥을 사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후배들이 내게 밥을 사달라고 하면,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용기있게 밥을 사달라고 해서 얻어먹은 신입생들은 자랑스럽게 자기 동기들에게 내게 밥을 얻어먹은 무용담을 화제로 꺼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 당시의 나는 거절을 잘 못 하던 예스맨이었던 터라 아마 신입생들이 사달라고 하면 다 사줬을 것 같기는 하다.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와서.


내가 가르쳤던 그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으면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니 두가지 였나?


내가 이 아이를 거지로 만들었구나.


and...


아이스크림 안 사줘서 학원 그만두면 어떻게 하지?


...


굉장히 속물적이지 않은가. 그땐 나도 좀 지금같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돈으로 아이의 환심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고 말을 하고, 좋은 말로 타일렀다.


그이후로 나는 조금 짠돌이가 되었다.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이유없는 선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스크림 안 사주면 학원 그만두겠다고 말한 아이가 그 이후로 한명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땐 그러시던가 하고 쿨하게 넘어갔다.


조건이 없는 선의는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문제가 없다. 어떤 사람은 조건 없는 선의는 받는 사람이 어떻게 이용을 하든간에 내가 선행을 한 것으로 족하지 않냐 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을 심리적인 거지로 만들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나쁜 마음을 갖게 만들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의 행동이 선의에서 시작되어 결과까지 선하게 끝나는 일은 별로 없을지라도, 최소한 예측되는 악한 결과는 걷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노력할지라도 어떤 부분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정도는 해야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계산에서의 압축성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