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설 Nov 14. 2023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은 가능한가

임상의사가 아닌 보건학자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만나고 차트에 적힌 병력을 읽어보면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 게 분명한데, 병원에서는 약으로 그들의 증상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이룬 성과는 놀라운 것이어서, 그 약들은 실제로 증상을 완화하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이들을 종종 삶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돌아가야 할 가정은 과거와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고, 병원 사람들은 모두 그가 다시 입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입니다. 우리는 손톱 밑에 찔린 가시로 아파하는 옆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지요. 특히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은 종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죽이며 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 합니다.

김승섭,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서문

 

내 주위에 실존하는 고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헤매고 있을 때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게 된 건 제겐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우리는 아픔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고통의 이면에는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었지요.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제게 위로를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롯한 당신'을 통해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고,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통해서는 천안함 장병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우리의 몸과 질병에 관한 지식이, 그 생산 과정에서부터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모든 글에서 사려 깊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김승섭 교수는 자신은 공부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저는 그의 연구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었지요.


그가 자살을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 아닌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살을 유발하는 고통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했으며, 자살에 관련된 세간의 낙인에 일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따라서, 간단히 말해 자살 행동은 정신적 고통에 갇힌 상태로부터 도주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속박감이 악화되어 해결 방안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경우, 상황을 벗어날 수단으로 자살을 고려할 확률이 커진다. 이는 터널 시야 때문에 상황을 불안정하게 인식하게 되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잠재적인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하게 때문이다. 이들은 잠재적 해결책을 하나씩 배제하거나 외면하면서 자살이 '바로 그' 해결책, 즉 고통을 끝내는 궁극적이고 영원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다가서게 된다.

로리 오코너,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126-128p, 132-133p


저는 자살시도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자살생존자이기도 하지요. 자살시도자는 자살행위를 통해 자신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드러냅니다. 자살시도자의 자살행위는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출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을 끝내기 위한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살시도자는 '죽고 싶어서' 자살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기 위해' 자살행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들의 고통에 응답하고 있는가, 솔직히 아직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의심을 품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참 소중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나의 고통에 응답해 주었던 누군가가 있었기에 제가 오늘 이곳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을 듣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비는 그대로 내리고 있더라도 이들과 함께 비를 맞는 지점에서부터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동체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