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없음'을 마주할 때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 마음산책
내게 사랑이란 상대방의 '있음'에 나를 내던지고, 이윽고 너의 '없음'에 다다르는 일이었다. 당신의 '있음'이 마른 후 남은 너의 '없음'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는 당신을 떠났다. 나의 '있음'이 사라지고 나의 '없음'을 네가 알아보지 못할 때 너는 나를 떠났다. 서로의 '없음'을 알아보는 일은 드물게 내 삶에 찾아왔고, 그리고 그 일은 나를 자라게 했다.
이 사랑의 세계는, 내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모순적이고 위험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자에게 나를 던져야 하기에, 그리고 내가 끌어안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타자를 품어야 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지만 끔찍하고, 찬란하지만 비루하다. 그래서 기독교에서조차 사랑은, 신이 죽어야 했던 일이라고 가르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보장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양귀자, 『모순』, 쓰다
‘있음’의 사랑은 너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묻지만, ‘없음’의 사랑은 당신에게 자신을 내어주겠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랑의 개념이 철회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없음'이 받아들여지고, 당신의 '없음'을 끌어안았던 일은, 다시 말해 수고로운 사랑의 경험은 한 사람을 자라게 한다. 삶에 '우리'가 필요하단 사실을 깨닫게 하고, 타인에게 열린 마음을 갖게 하며 공동체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네가 가진 것만 보고 널 만났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건 어쩌면 나의 ‘없음’이 받아들여지고 싶은 사랑의 욕구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기 때문인지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불쑥 찾아올 함께 있을 때만 견디어지는 결여를 견디기 위해, 서로 떠날 필요가 없는 사랑을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