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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것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짧은 단상

by 박지설

작별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건, 고통을 현재로 가져오는 일이다. 사라진 이들을 오늘로 데려오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황현산 선생은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고 말했다. 나는 이들의 고통을 내 현재로 여기는 위인은 못 된다.그저 애도가 필요할 때 눈 감을 수 있는 넉넉함 정도 있으면 감사하다. 그리고 그런 여백이 우리 가운데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작별해야 한다고,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 같다.


작별하지 않았던 이들 덕분에 우리가 그들과 만날 수 있음을. 같은 작별이 반복 되지 않을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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