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이야기
상반기가 끝났습니다. 결산을 하고 하반기 계획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한 주였습니다. 상반기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막 시작한 출판 브랜드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는 실적들도 있었지만, 하반기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브런치 글 네이밍부터 바꾸기로 했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도 아닌데 ‘일관성’이라는 단어에 홀려 바보 같은 선택을 유지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스토리PD로 살아가기. 줄여서 스P살. 제 업이 더 이상 스토리 PD에 머무르고 있지도 않고 접하는 분 입장에서 알 수도 없고 후킹한 워딩도 아니라서 버리기로 했습니다.
또 버려야 할 게 뭐가 있을까. 어떤 관성을 버리고 무엇을 혁신해야 할까. 혁신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무게감과 진지함을 가지고 변화를 주어야 할 부분이 뭔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텍스티는 콘텐츠를 잘 만듭니다. 아직 제가 목표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꽤 노력 중이에요. 잘 만든 콘텐츠의 요건은 무엇일까요? 압축하면 (이야기의) 재미, (기획의) 새로움, (딜리버리의) 완성도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재미부터 이야기하자면, 텍스티의 소설들은 재미없게 나오기가 힘든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이야기의 방향성을 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작가님과 결과물에 대한 상을 맞추고, 시놉시스-트리트먼트-원고(초고부터 3고까지)로 이어지는 3단계 개발 과정을 충실히 거치려 노력합니다. (판단에 따라서는 트리트먼트 단계를 스킵하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박도 하긴 한다는 이야기ㅎ)
기획부터 원고에 이르기까지, 잘 만든 소설 한 편이 나오게 되는 핵심 역량은 작가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입니다. 텍스티 팀은 이것에 있어 꽤 하드 트레이닝이 되어 있는 팀이고, 저는 더 높은 수준의 프로듀싱을 요구합니다. 높은 수준의 프로듀싱이라는 것은 작가님의 작업에 프로듀서가 깊이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작가님이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중이 더 쉽게, 더 호감가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가님의 텍스트와 마음에 딥다이브를 하여 작품과 그를 깊게 이해하고, 그가 좋은 것을 꺼내놓기 위해 자신의 안으로 몰두하는 동안 그의 옆에서 밖을 살피며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이드의 역할이라는 것이, 프로듀서가 빠삭한 시장 파악 혹은 트렌드나 사회 의제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반하여 '이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한 노력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텍스티의 가이드란 독자의 마음으로 먼저, 또 깊이 가보는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모든 의견을 작가님께 드리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것의 채택 여부에 대한 판단은 작가님께 맡깁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작가 스스로 작업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본인의 역량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방향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품에 도움이 되는 의견과 그렇지 않은 의견을 선별하고 필요한 것을 채택하실 거라는, 작가가 프로듀서를 신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와 프로듀서 간에 상호 존중, 신뢰, 애정이 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티의 모든 프로듀서들이 이러한 프로듀싱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재미'는 이야기 상품이 갖추어야 할 기본입니다. 팔리려면 새로워야 합니다. 새로움은 기획에서 빚어집니다. 텍스티는 강박적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책날개를 뜯어 책갈피로 쓰게 한다거나 책마다 전용 BGM인 북-음 QR코드를 넣는다거나 장편소설에 내지 비주얼 연출을 한다거나... '책'이라는 물질을 조금 더 새롭게 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작품 기획에서도 그런 태도를 견지합니다. 텍스티의 네 가지 소설 라인 중 장편소설과 앤솔로지의 경우, 기획 하나하나에 그런 면모를 갖추도록 노력하고 있고, 막 론칭한 매드앤미러 시리즈, 내년 봄 론칭할 사이드미러 시리즈는 더더욱 그런 특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상반기에 1차 기획을 마친, 26년을 타겟팅하는 세 가지 프로젝트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예정이고요.(저는 26년에 그것들을 선보일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납니다.)
저는 작품 기획 시 독자분들이 '읽어보고 싶다'라고 반응할 만한 포인트가 아주 날이 벼려진 것으로 최소 3~5개는 포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차별적 특징이고, 곧 새로움이라고 할만한 것들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서점 MD 님들과 미팅 때 "이번 책은요," 하면서 건넬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고요. 그게 잘 전달이 되면 ’이 책은 좀 팔리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면서 그 느낌의 크기에 따라 발주량이 잡히게 되고, 특히 매입 발주를 한 서점 입장에서는 팔아야 손해가 나지 않으니까 가급적 노출에 애쓰게 됩니다. 초반에 그 힘을 받으면 그나마 좀 책을 팔기가 편하고, 책이 퍼져나가면 나갈수록 출판사의 노력에 효율과 효과가 더해진다는 생각입니다.
완성도는 작품의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재미' 하위에 갖추어야 할 요소이고 여기서의 완성도는 독자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완성도를 의미합니다. 현재의 텍스티는 출판사의 꼴을 갖춰가고 있지만, 그것은 1단계 클리어 목표 지점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야기 브랜드, 나아가서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목표합니다. 재작년 사업 기획 때 텍스티의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10개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는데 10년 차의 텍스티는 현재의 텍스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브랜드입니다. 거기로 향하기 위한 빌드업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완성도'입니다.
저는 텍스티를 그 자체로 크리에이터로 생각합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는 작가님들이 텍스티가 내어놓는 콘텐츠에 탑재할 이야기를 창작하신다면, 저희는 그 콘텐츠를 향유하는 '대중들의 리액션'이라는 이야기를 창작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는 그런 이미지를 대표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있지 않지만 그런 브랜드로 가기 위한 빌드업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텍스티의 슬로건은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텍스티의 이야기를 어느 독자분이 다른 누군가와 같이 읽고 싶은 무엇으로서 대하려면, 위의 '재미', '새로움'에 더해 브랜드로서의 '완성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독자를 참여시키고 독자와 놀고 독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독자의 삶 안에서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단순히 "이 책 재밌더라. 너도 읽어봐"라는 수준의 추천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있는 수단 중 하나로 텍스티를 자연스레 어필해, 다른 누군가가 스스로 문을 열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귀여운 수준이지만 최근 진행 중인 텍스티 예타단 1기 모집, 매드앤미러 백일장 이벤트, 차기작 『아카식』 텀블벅 북펀딩 등이 그 일환의 작은 점들로 배치된 것들이고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텍스티는 이런저런, 소소하지만 재미있고 새로운 시도들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나름대로 텍스티 브랜드 전략에 맞추어 올바른 점들로 채워나가고 있지만...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텍스티가 하고 있는 것들은 분명 새로운 것들이 많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향기를 피우며 우리를 알아줄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으로는 어려운 시장 상황에 돌파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텍스티는 독자분들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독자의 삶 안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7~10월 『편지 가게 글월』동네서점 북토크 투어가 진행됩니다. 텍스티의 존재를 알리고, 독자분들이 텍스티를 어떻게 느끼는지, 텍스티는 과연 즐길 만한 브랜드인지 서로 경험을 나누고 영감을 얻는 시간으로 꾸려갈 예정입니다.
그 첫날이 오늘입니다. 오늘 해방촌에 위치한 서점 별책부록에서 아래의 행사를 진행합니다. 요즘 궂은 날씨가 이어져서인지 정원을 꽉 채운 모객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텍스티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고요.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고 놀러 가볼까 하는 분이 계시다면 별책부록(https://www.instagram.com/byeolcheck/) 게시물을 확인하시고 카톡 메시지를 보내보세요:)
아, 그리고 조만간 '완성도'를 채우는데 함께 해주실 마케터 분도 합류하실 거예요. 텍스티에서 처음으로 출판 마케터님을 채용하는 것이라 기대가 되고 설렙니다. 텍스티가 새로운 DNA를 받아들여 어떻게 진화하게 될지 저부터 궁금합니다.
또 하나, 주간 업무 일지를 쓰는 방식의 브런치 글쓰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사실 끈기 있게 1년을 채우고 싶었고 지난 몇 주간 이번 주도 밀렸네. 이제 2주 치 밀렸네. 어느새 3주치네. 이러면서 자책하고 있었는데(지금도 약간은 하고 있어요ㅜㅜ 하지만 반년 동안 한 주도 안 빠지고 기록한 것도 대단하고 칭찬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ㅎ) 게을러져서 쓰지 않았다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간 일지와 에세이의 느낌이 어색하게 어우러져왔다고 생각했고, 그 점이 좀 아쉬웠는데, 그냥 일뿐만 아니라 삶의 이야기도 공유할 수 있는 에세이를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8월부터는 편집자로서, 브랜드 디렉터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또 매주 쓴다는 강박도 버리려고 합니다. 글감이 충분히 고이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도 써내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더라고요. 이런 생각이, 결국 게을러짐에 대한 방증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하반기에는 단편 소설을 꼭 써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에 대한 시간 확보도 필요하고, 글쓰기가 괴로운 것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라 일단 24년 하반기는 그렇게 보내보려 합니다.
아무튼 8월에 돌아올게요. 오늘 시작하는 동네서점 북토크 투어도 잘 해낼게요.
이번 주도 무탈한 주말 보내시길요.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