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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새 Nov 19. 2023

고기타는 소리와 빗소리의 상관관계

내 나이에 캠핑 같은 소리 하네

친구들과 자연휴양림에서 글램핑을 하자던 계획에 따라 자연휴양림 예약 시스템에 회원가입을 하고 바라산자연휴양림 글램핑 사이트에 예약을 걸어두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지, 예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해야 한다고 한다. 공공시설이다 보니 골고루, 평등(?)하게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고안한 방법인 듯하다. 그만큼 인기가 있는 곳이다 보니, 3명의 친구가 모두 예약을 걸었지만 3명이 다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고 나니, 회원가입한 김에 비교적 쉬운(?) 예약처가 있는지 근처를 둘러보게 되었다. 

    오토캠핑장이라 하기엔 불편한, 꽤 가파른 비탈에 자가 텐트용 나무 데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불편 덕(?)에 게으른 예약자에게까지 기회가 닿았나 보다. 자리가 있다는 시스템의 표시를 보자마자 덜컥 예약을 했다. 추첨에서 떨어진 것에 대한 보상 심리도 작용했으리라... 그런 큰 불편을 갑작스레 기꺼이 감수한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그렇게까지 많이 불편하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기도 하다. 

 

   9월 마지막주, 몸 여기저기 염증 반응이 감지되었다. 처음에는 몸살이나 감기려니 했건만 눈이 퉁퉁 붓고 아침마다 목이 잠기기 시작해서 편두통, 또는 뇌를 온통 다 뒤덮은 두통으로 머리를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학교 생활을 하루하루 간신히 이어갔다. 다행히 학교는 시험기간이라 편한 시간이 좀 있었다. 담당 학년은 온라인 수업 중이었고 그나마도 실시간으로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었다. 겁을 내었지만, 회복이 느리지는 않았다. 약을 성실하게 먹었고 몸을 따뜻하게 아끼는 등, 40대에 들어서 거의 매년 감기몸살로 한 번씩 크게 앓았던 아픈 기억이 나를 보살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주의 마지막, 갑작스레 서늘해진 아침저녁의 온도를 견디며 불편하게 자야 하는 일이며 식사 준비 하나도 허리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일에, 제법 먼 길을 운전해 갈 일이며 먹거리를 미리 준비하고 무거운 용품들을 챙겨 비탈길에 있는 야영 데크를 오르내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같이 가기로 한 딸아이의 의중을 슬쩍 떠보았다. 병도 나고 꾀도 나서, 웬만해서는 15,000원의 예약금을 버리고 집에서 쉬고 싶었다. 

    "딸, 엄마가 요즘 몸이 개운치 않네. 어떻게.... 캠핑 가기로 한 거, 취소하면 안 될까?"

    "엄마는 약속을 잘 안 지키더라~"

    물론, 내가 약속을 지키고 안 지키고가 쟁점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 억울하기만 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딸아이의 마음은 알아듣겠다. 그럼 되었다. 말이 알아들어지면 그걸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 된다. 

    "캠핑이 가고 싶구나."

    "엉~"

    아들보다  딸아이가 캠핑을 좋아했다. 딱 1년 전, 작년 가을에 캠핑을 갔었다. 그때는 아들이 있었다. 지금 아들은 없고 그래서 마음도 헛헛한데, 이 참에 그냥 딸이랑 둘이 호젓하게 캠핑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친정집 창고에 8년 넘게 맡겨둔 캠핑짐을 꺼내왔고, 가을 어느 날을 잡아 마음을 먹고 식구들을 데리고 떠났다. 포천 쪽 산정호수 부근이었다. 밤나무가 많았고 뒷산에 도토리가 후드득 떨어지는 어느 사설 캠핑장이었다. 캠핑장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텐트를 친 곳은 사설 캠핑장 건물 뒤쪽이었다. 사람들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 후미진 건물 뒤쪽 하수구 통이랑 가스 배관들이 어지럽게 보이는 뷰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도 우리(?), 나는 좋았다. 툴툴거리는 아들 입을 막으려고 일부러라도 그랬겠지만 흥겹게 보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밤에 피워둔 화롯불도 좋고 그 불에 구워 먹는 고기맛도 좋고 오랜만에 아이들이랑 노지에서 어울렁 더울렁하는 시간이 좋았었다. 귀찮다는 아들까지 꼬셔서 뒷산 산책하면서 이런 거 저런 거 주워오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한다. 딸은 엄마, 아빠가 해주는 모든 것을 즐거워해 준다. 가끔 내보기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즐거워해 준다. 진짜 즐겁기도 하겠지만 그래 보이는 것이 내 시선인지, 아이 마음인지 알길 없지만 어쨌든 고마운 마음이다. 싫으면 싫다고 하는 아들은 자기 마음에 충실해서 다행이다. 가끔 섭섭해져서 소리 지르고 싸우지만 아들은 그게 왜 섭섭한지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아들이랑 있으면 재밌는 점이 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침낭을 두르고 자고 일어나 매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물을 끓이고 간단하게 아침을 그을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이 텐트며 캠핑 장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왜?"

   같이 산 세월, 좋은 점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것이 많아지는 것뿐이다.

    "애들도 다 크고... 뭐 중고로 팔까 싶어."

   10년도 더 전에 미국에서 그 많은 이민 가방을 줄줄이 밀며 들어올 때도 버리지 않고 그 무거운 것들을 다 짊어지고 왔었다. 이 텐트로 그 엄혹하다는 Death Valley도 가서 자고 오고, 그랜드 서클 20일에 캐나다 Baff와 Jasper까지 자동차 여행도 이 장비들을 싣고 다니면서 해오던 것들이다. 나에게는 사진 앨범책보다 더 애착이 가는 것들이기도 하다. 나와 아이들의 추억이, 그나마 남편과의 시간이 깃든 것이다. 

    "팔지 마, 그냥 둘래."

    "더 쓸 거 같지도 않은데... 왜..."

    실용적인 남편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실용적인 이유를 대줘야지

    "왜, 안 써. 내가 다닐 거야, 캠핑."

    "커서 불편해. 팔고 작은 걸로 하나 사."

    "중고로 팔면 똥값이고, 새로 사려면 큰돈 들어. 혼자서도 칠 수 있으니 괜찮아."

    그렇게 내 애착 텐트는 도로 우리 집 창고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걸 1년 만에 약속(?)을 지키기라도 할 양으로 꺼냈다. 딸이랑 둘이만 가는 캠핑이라서 기대가 되었다. 

    캠핑장에 도착하고 보니, 주차장에서 데크까지의 거리는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난이도였다. 가파르기와 거리가 역대급이었다. 속으로 난감했지만, 딸 눈치가 보였다. 또 내 장기를 발휘했다. 기꺼운 척하기... 아이도 호응했다, 즐거운 척하기. 거리 등을 감안해서인지 캠핑장에 카트가 있었다. 쓰고 제자리에 두면 되는데, 카트의 도움 따위가 무색한 경사를 어쩌란 말인가... 딸 말대로 카트를 끄는 것이 그 카트의 무게만큼 더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경사 때문에 아무리 끈으로 묶어도 끈이 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늘어지면서 짐이 자꾸 굴러 떨어져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 굴러 떨어진 물건들을 집어오는 수고까지.... 아이와 나는 중간중간 굴러 떨어진 짐을 다시 내려와 들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면서 차와 데크 사이를 각각 3~4번씩 왕복하고, 까먹고 두고 온 핸드폰 때문에 한번 더 다녀오고 나서 결국 텐트를 치기 전에 이미 기절 직전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나이에 캠핑은 무리야... 무리야... 를 연신 되뇌었지만 딸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이라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위기를 번번이 무사히(?) 넘겼다. 

    "엄마, 텐트 칠 수 있겠어?"

    "그럼, 그럼."

    "힘들면 좀 쉬어."

    "너도 힘들지? 엄마가 의자 펴줄게, 일단 넌 좀 앉아있어."

    이렇게 처절할 일인가, 캠핑이... 가끔 우리 가족의 캠핑은 난민 캠프 수준의 것이기 일쑤였지만 이번엔 그 이상이다. 난민도 난민 나름이지, 엄마와 딸 둘이서 이 왠 사서 고생이 이리도 서글플 일인가 말이다. 

    그래도 잠깐 쉬고 나서 해가 간당간당 남은 틈을 타서 둘이 이러저러 텐트를 쳤다. 이미 기운이 다한 탓에 꼼꼼하지 않게 그러나 텐트를 모양대로 세운다는 목적에 걸맞게. 데크 위라서 바닥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우리에게는 에어매트도 있었다. 무진장 무거운 에어매트를 그 경사에 끌고 올라왔으니 그 덕을 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헬스장 쇠질 용 덤벨보다 무거운 화로도 있었다. 텐트를 치는 사이 날이 저물어 화로를 급히 펴고 바라고 바라던 불질을 시작했다. 불은 잘 붙지 않는다, 토치를 잘 써야 한다. 간신히 불을 붙이고 나무가 잘 타기를 기다린다. 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아래에서 하나로 마트를 지날 때 산 돼지고기가 날 잡아 잡수쇼 하며 길게 늘어져 있고 햇반을 데울 물이 끓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줌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네... 네에?"

    "여기 캠핑장에서는 불 못 때요. 예약할 때 주의사항 못 보셨어요? 가스레인지 같은 건 되니까 그걸로 하세요."

   '아저씨 그건 아니지, 캠핑은 불에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 하는 거란 말이거든요.'이라고 말은 못 하고 어물쩍 못 알아들은 척,

    "아...."

    모자를 보니, 산림 관리인인 거 같았다. 

    "제가 안 읽어보고 그냥 예약해서...."

    "아이구 저런...."

    아저씨가 모질지 못했다. 내 잘못을 지적은 했지만 내가 너무 쉽게 사그라들고 미안해해서 인지, 아저씨도 되려 어쩔 줄 몰라한다.

    "고기 구워드시려면 저 아래(주차장보다 더 아래쪽을 가리키며) 가시면 화로랑 테이블까지 있는 데 있어요. 거기서 해 드시고 올라오시면 돼요."

    '어휴, 내가 저기를 어떻게 올라왔는데 내려갔다 오라고? 이 먹을 걸 다 짊어지고 또?'라고 말은 못 하고....

    "아~ 이제 막 불이 붙어서...."

    ".... 그래도 끄셔야 하는데...."

    ".....아.... 아까워서...."

    "그렇긴 한데....."

    "우리 둘 밖에 없으니 오래 안 피우고 바로 해 먹고 끌게요."

    ".... 그러시면 안 되는데...."

    "........." (눙쳐 앉아 뭉개자, 따가운 뒤통수는 잠깐이고 근육통은 영원하다.)

    "....그럼, 제가 30분 뒤에 다시 확인하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꺼주세요...."

    아저씨의 어물쩡하는 허락 같지 않은 허락에 옳다구나 싶어 불이 제대로 잦아들지 않은 화로 위에 석쇠를 올리고 급히 두툼한 삼겹살 4줄을 모두 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숲의 모든 텐트 속,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익숙한 그 냄새가 숲을 가득 메웠다. 불길에 돼지고기가 급히 타기 시작하면서 기름이 떨어지고 불길은 더 치솟아 난리가 난 것이다. 냄새뿐 아니라, 요란한 연기까지 심해져서 나와 딸이 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엄마, 고기 타."

    "아, 그래?"

    불에서 건져내서 탄 부분을 잘라내니 그 안 쪽은 아직도 벌건 돼지의 맨 살결 그대로였다. 그 와중에도 오가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살피며 고기를 적당히 잘라 불길이 심하지 않은 곳으로 옮겨 굽기 시작했다.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30분 안에 이 난관을 뚫고 상황을 진정시켜 가며 아이에게 불에 직접 구운 돼지고기를 먹여야만 하는 미션임파서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며 눈을 굴리고 집게와 가위를 사정없이 휘두르며 급하게 말했다. 

    "딸, 돼지고기라서 기름 많이 떨어져서 불이 붙는 거야. 불이 붙으면 고기를 들어 올려서 기름을 털고 다시 뒤집어 올려."

    "엄마,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해?"

    "푸하하하하핳"

    아이의 근원을 건드리는 질문에 결국 온몸에 고기 훈제향을 뒤집어쓴 채 웃음이 크게 튀어나왔다. 다른 텐트 데크들에서 우리를 흘끔흘끔 내다보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고요한 숲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우리 데크에서 큰 불길이 치솟으며 그 향긋한 소나무 향기를 돼지의 향으로 뒤덮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내가 웃기 시작하자 같이 웃음이 터진 딸까지 두 여자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까지.... 그 캠핑장 저녁의 고요와 숲의 향취 따위는 이미 산 아래로 다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직화 구이 고기에 대한 마음이다. 우리는 4줄의 삼겹살 일부만 타서 오려내고 그걸 다 먹고 햇반과 김치까지 꺼내 야무지게 다 먹었다. 그리고 30분 만에 온다는 아저씨는 1시간이 넘게 천천히 와서 꺼진 불을 확인하고 흡족하게 내려가셨다. "고맙습니다."라는 내 경쾌한 인사 끝에 숲 끝까지 냄새가 퍼졌다는 말씀을 남기고 살살 웃으시며...

    딸이랑 둘이 텐트 속에서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딸은 핸드폰을 더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들었다고 했는데... 캄캄한 새벽에 딸이 나를 가만히 불렀다.

    "엄마, 비 오나 봐..."

    "으응... 괜찮아. 자~"

   잠결에 빗소리가 꽤 들렸지만 새벽이슬을 생각해서 텐트 자락 안에 웬만한 짐들은 잘 정리해서 쑤셔 넣은 참이고, 전날 심한 왕복 운동 덕에 여기저기 쑤셔서 정신이 혼미한 탓에 안 괜찮을 것 같은 모든 것들이 그 순간은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몸이 일으켜지지는 않고 잠이 푹 들지도 못한 채 빗소리는 꿈결처럼 밤새 들리는데 내쳐 잠이 든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 그런 채로 아침 해가 제법 밝아올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아침 해가 밝아오면서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잦아들었다. 

    "엄마, 바닥이 축축해. 엄청 차가워."

    "뭐라고?"

    그제야,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맙소사, 밤새 내린 비가 텐트 바닥에 얌전히 다 고여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어매트가 마치 수영장에 떠있는 고무침상처럼 빗물과 우리 침낭 사이를 가로막아주고 있었고 침낭 중 발아래쪽 일부는 에어매트 아래로 쳐져 물에 푹 젖어 있었다. 어쩐지 자면서 발아래가 자꾸 차가운 거 같아 몸이 옹그려지더라니...

    "엄마, 어떻게 해?"

    "괜찮아, 우리는 안 젖었잖아."

    "물이 어디로 들어왔을까?"

    "더 누워있어. 엄마가 살펴볼게."

    간신히 몸을 일으켜 나가 봤더니 데크에 깔아 둔 바닥용 타프를 텐트보다 넓게 깔아서 그 비닐 타프가 빗물을 다 받아준 덕분에 미니 수영장이 개설된 것이었다. 그 가운데 우리 텐트가 바닥을 담그고 서있었고 비는 멈추었지만 우리 짐들은 이미 젖을 대로 다 젖어 옷가지를 싸가지고 간 가방 아래까지 다 축축해져서 옷의 일부도 갈아입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텐트 아래에 다 밀어 넣은 것이 오히려 큰일이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리는 빗물에 내어놓을 수는 없었으니.... 

   그 와중에도 나랑 딸은 야무지게 라면을 끓여 아침을 해결했다. 의자를 펴서 물기를 닦아 앉아서 축축한 엉덩이 기운에도 뜨뜻한 국물이 일품이라며 두 여자가 또 미친 듯이 웃으면서 라면에 햇반까지 말아 두둑이 먹고 나니, 엄두는 안 나지만 일한 기운은 생겼다. 모든 것이 축축한데, 두고 말릴 시간도 없고 나무 사이라 햇볕이 잘 들지도 않아 그냥 대충 둘둘 말아 걷기로 했다. 다행히 캠핑짐이 엉성해도 차에 대충 실렸다. 모든 것이 축축하고 눅눅하니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차 뒤에 밀어 넣었다. 다행히 짐을 올리는 것보다 내리는 왕복 운동이 덜 힘들었고 카트를 쓰지 않고 더 자주 오르내리면서 직접 들어 옮기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아침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딸이랑 나는 비에 젖은 짐을 싣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반은 잠옷인 채로 거지꼴로 귀가했다. 집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돌아온 우리 꼴을 보고 기가 막혀했다. 짐은 그날 내리지 않았다. 내릴 수 없었다. 그 남은 주말은 그저 몸보신에 연연했다. 짐 따위야... 그리고 1주일 내내 그 짐을 싣고 출퇴근을 했다. 차 트렁크에 얼기설기 실린 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지만, 심하지 않았다. 다행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다음 주말 남편이랑 딸이 아파트 뒤뜰에 다시 텐트를 쳤다. 물론 캠핑용이 아니라, 비에 젖은 모든 것을 말리기 위한 작업이었다. 남편은 워낙 꼼꼼하고 깔끔해서 일을 믿고 맡길만했다. 일일이 마른걸레와 젖은 걸레로 장비들을 닦아가며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아파트 뒤뜰은 텐트뿐 아니라 우리의 온갖 캠핑 장비들이 그득 찬 탓에 주민들이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남편이랑 딸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잔뜩 미안해진 내가 점심을 준비해서 뒤뜰을 향해 손짓을 했다. 둘이 올라와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사이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왔다. 아파트 공용지에 물건을 늘어놓으시면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당연히 우리 캠핑짐들 이야기였다. 남편에게 산림 관리원이랑 있었던 일 이야기를 해줬다. 가는 곳마다 민폐라고 했더니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재빨리 내려가서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햇볕이 좋고 바람이 불어주니 우리가 점심을 먹는 그 사이 텐트도 짐들도 구석구석 싹 다 말랐다. 역시 뒤처리는 남편이 해줘야 제맛이다. 사고는 내가 치고 뒤처리는 그가 해야 아귀가 맞는다. 


   "엄마, 다음에는 비 안 올 때 가자."

   "아이고, 비가 안 와도 이제 못 가겠다."

   "왜, 재미없었어?"

   "아니, 너무 재미있어서, 이제 엄마 나이에 감당이 안된다."

   "오잉?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이가 드니, 재미도 가만가만 있어야 되는 거 같다 ㅎㅎ"

   " ㅎㅎ 그게 무슨 말이야."

   "너도 나이 들면 알게 될걸?"

   "그럼, 이제 팔까?"

   그 사이를 파고들고 실용적인 남편이 또 '당근'같은 소리를 했다. 

   "아니, 그냥 둬봐. 오늘이 지나면 또 가고 싶어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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