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처음 술에 취해 리어카를 탄 날, 그 후일담
대학생이 되었지만 1학년 1학기 수업은 시작도 못했다. 입학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제 국립 사범대학 학생들도 임용고시라는 시험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90, 91학번부터였나? 그 제도는 대학생들을 치열한 밥그릇 싸움의 장으로 내몰았다. 이름하여, '교원양성 종합대책안 투쟁'이었다. 그때 4학년은 해당이 안 되는 사안이었지만 그들은 사범대를 지키기 위해서(당시에는 그런 선배들이 독수리 5형제처럼 보였을 뿐, 뭐 무엇을 왜 지키는지는 나중에 서서히 알게 되었지만, 그 역시 '우리' 안의 논리일 뿐이었다)라는 명분으로 누구보다 가열찬 투쟁의 선봉에 섰다. 3학년들은 입학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고, 심지어 시범 시행 연도에 걸린 것이었고, 2학년 역시 비슷비슷하게 완전하게 시행되는 시작 해에 걸린 것이었다. 그들이 시작될 새로운 제도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과의 특성은 거개가 심각하게 없는 집, 요즘으로 말하면 흙수저도 아니고 수저가 아예 없는 자식들이 공부는 그럭저럭 하니 대학은 꼭 가고 싶고, 그래서 거의 무료로 대학을 다니고 바로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하나 믿고 온 곳이었기 때문에 임용고시라는 새로운 직업 시험은 큰 난관이었다. 대학 입학 전에 충분히 공지가 된 내용이 아니었다고 했다. 정보가 느리고 불투명하던 시대라 그랬을 수도 있고, 그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알림 정도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별다를 것 없이 모르고 그렇게 들어갔지만, 1학년이라 뭐가 뭔지, 그래서 교사 되고 싶으면 그냥 시험보지 뭐라는 단순한 상태였다. 다행히 우리 동기들 중에는 그렇게 바뀐 정보에 대해 알고 들어온 기특한 인물들이 그래도 70%는 넘었다. 입학 커트라인이 우리 학년 때에 훅 낮아졌다는 말도 간간이 들렸다.
우리는 3월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다짜고짜 사범대 안 마당에 뉘어졌다. 내 동기들 중, 딱 절반이 여자였는데 그 절반의 여자 동기들 중 절반은 첫날 학교에 나오고 사태가 진정되면 학교에 다니겠다며 학교에 두문 불출하기 시작했다. 나는 엉겁결에 남자 동기들과 심부름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앰프를 나르고 전선들을 연결해가며 어느새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일찍 등교하여 수업은 하나도 안 하고 누구보다 늦게 하교하는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딸이 여대생이 되었다며 샬랄라 한 봄을 타기 시작했고, 주말만 되면 봄 원피스를 사러 가자고 했지만 목장갑에 어울리는 원피스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 엄마가 쇼핑을 조를 때마다 요리조리 피해 나왔다. 그러느라 주말에도 학교에 가는 아주 성실한 학생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학교만 가면 술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하교하는 딸내미의 행색을 보며 뭔가 수상하다고 여기기 시작했지만 큰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조차 대학 생활의 낭만이겠거니, 그저 또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엄마는 자기 머릿속의 여대생 이미지를 딸이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빠른 판단과 단념을 하긴 했다. 그러나 마지막 단념의 순간에 엄마는 나랑 영화를 한편 보자며, 비디오 가게에서 '겨울 나그네'를 빌려 오라고 했다. 엄마가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알려준 여대생은 '겨울 나그네'에 나온 이미숙이라는 여배우였다.
"야, 저거야 저거. 저게 여대생이지. 저러고 다녀야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영화 테이프를 같이 보자며 졸라대는 통에 앉아서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렇게 차분하게 긴 머리를 찰랑대며 가슴팍에 책을 꼭 안고 다니다니. 이뻐서 어쩔 거야? 강석우의 날렵한 턱선이 더 눈에 들어왔지만 엄마는 옆에서 여대생은 저런 모습이라며, 내가 이상한 애라고 했다.
"엄마, 우리 학교에 저런 애 하나도 없어. 으하하하하"
"아니, 쟤는 배우니깐 이쁘다고 치고, 옷이랑 몸가짐을 저렇게 하고 다니라고"
"아유, 세상에 저 머리 저거 걸리적거려서 어쩔 거야?"
"넌 아직 짧으니깐 길러봐. 막상 기르면 그렇게 안 답답해."
고3 내내 거의 스포츠에 가깝게 자르고 다닌 머리가 그래도 제법 길어서 웬만한 어린 남자애들 상고머리 정도 길었다. 그러나 단발이나 긴 머리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저렇게 학교 다니고 응? 연애도 좀 하고, 응?"
"푸하하하하, 가방 두고 책을 왜 안고 다녀? 불편하게, 그러니깐 저렇게 쏟지."
"야, 책 좀 떨어 뜨리고 그래야 남학생이 주워주지."
"바닥에 있는 그 무거운 앰프도 내가 줍는 마당에 책은 무슨..."
"뭐? 앰프가 뭐야?"
"아냐 아냐, 저거 재미없어. 나 간다."
"또 어디가?"
그 시절, 엄마한테 제일 많은 들은 말이 '또 어디가?'였다. 그렇게 집에는 거의 붙어 있지 않았고, 집은 오로지 '잠을 자는 곳'이라는 명백한 규정만 지키고 살았다.
3월 2째 주부터였던가? 3째 주부터 였던가? 슬슬 수업들이 시작되었다. 특히, 전공과목과 상관없이 1학년들이 들어야 한다는 교양수업들은 다른 단과대학에 개설된 것들이 많아 더 이상 빠지면 그쪽 교수들에게 더 이상 사정을 봐달라 할 수 없었다. 우리 과 교수들과는 입장이 전혀 다르거나, 심지어 인문대학이나 사회과학대학 쪽은 아예 대놓고 교원양성 대책안에 대해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대학 교양영어'라는 교양 필수 과목은 인문대학 영문과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이었는데, 강사 입장이라 더 여지가 없었던지 수업에 들어와 달라 통사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영어 지겨워. 국어교육과에 왔는데도 영어 해?"
"교양 필수란다. 영어 못하면 교양 없어 보여, 가자. 크크크크"
이러면서 우리 과 새내기 25명이 쪼르르 강의실에 들어갔던 날이 기억난다. 날이 너무 예뻤다, 수업 시간에 강의실에 앉아있기 괴로운 날이었다. 그 넓은 교정에 꽃들이 여기저기 툭툭 터지고 있었고 학교 안에 숲에는 나무들이 연두색 새 이파리들을 일렁거리고 내놓기 시작할 때였다. 이럴 때, 영어 수업이라니.... 그러나 겨우 25명이 처음 들어가는 수업, 빠지면 너무 티가 났다. 대학에 와서 처음 듣는 수업이라며 애들이 서로 다 삐삐 치고 연락들을 해서 전원이 모여 함께 인문대학으로 건너 걸어갔다. 엄마 말대로 이쁘게 들 하고 귀를 뚫어 빨간 열매 모양 귀고리를 한 H가 앞에서 팔랑팔랑 걸어가고, 그 옆에 까무잡잡하고 섹시하게 이쁜 Y는 노란색 재킷에 얼룩덜룩 물 빠진 청바지가 멋스러웠다. U랑 HW가 내 옆에 와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며 까르르 웃고 뭐라 뭐라 말을 했고, 우리 뒤로는 남자 동기들이 우르르 따라오고 있었다. 왜들 그렇게 몰려다녔는지.... 나중에 알았지만 사범대생들은 학교 안에서 제일 촌스러운데, 그중에서도 국교과랑 역사교육과가 제일 심해서 우리 과 애들이 몰려다니면 다른 애들이 '양촌리(전원일기의 거기) 애들 떴다'라고 했단다. 그러나 우리는 92학번, 과 안에서 선배들이 X세대들은 말을 잘 안 듣고 퐈이팅이 벗다며 당시 나름 새끈한 신세대로 통하던 학번이었다. 그래서인지 선배들보다는 좀 덜 양촌리스러웠다. 어쨌든, 어리바리한 매력의 신입생들이 촌스럽고 상큼하게 우르르, 그렇게 우리는 그날 영어 강의실로 향해 가면서 다들 봄기운에 약간씩 들떠 있었다.
"국교과, 니들이 제일 고집세. 다른 과는 다 시작했어."
영어 강사는 젊고 멋진 남자였다. 무려 서울에 사는데, 우리 학교 수업 때문에 주 2일만 내려온다고 했다. 올 때마다 수업을 못했는데, 드디어 시작한다며 우리만큼 신이 나 있었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영어 발음이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과는 사뭇 다른, 정말 세련된 그 서울 사는 영어강사에게 우리 과 여자애들과 나는 빠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회화 중심으로 할 거야. 니들 다 공부해서 대학 올 정도면 영어 문법은 잘할 거고, 읽기도 어느 정도 할 텐데 말은 못 하잖아?"
"네~"
뭐든 다 '네'라고 할 판이다. 앞줄에 쪼르르 않은 10여 명의 여학생들의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면 강사도 우리랑 눈을 맞추며 웃어가며 수업은 착착 진행했다. 첫날이라 강의 진행 방식에 대한 소개를 주로 했다. 멋진 남자 앞에서 이뻐 보이고 싶은 10여 명의 소녀들은 수업에 열심이었다.
"회화 중심으로 진행할 거라, 역할극 같은 거도 하고 그럴 거니깐, 이 수업시간에 쓸 영어 이름 정하자. 그게 싫으면 그냥 자기 이름으로 해도 되고"
강사의 제안에 다들 자기 이름을 어떤 걸로 정할지 즐거운 쑥덕거림이 시작되었다. 강사가 중간 쉬는 시간을 주자 다들 왁자지껄 아는 영어 이름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당대를 휩쓴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팝 스타들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낙점되었다. 마돈나, 맞아 바로 그 마돈나, 브룩 쉴즈의 브룩, 소피 마르소의 소피, 이건 프랑스 이름인데? 어쨌든 소피, 미셸, 앤, 줄리아 등등. 남학생들은 아놀드, 리차드, 톰, 영어교과서에서 '철수'와 같은 입지를 가진 스미스 씨까지... 람보도 있었던 것 같다. 제일 비실거리는 희여 멀건 한 D가 람보였던가? 나는 마음으로 고오급진 이름을 정했다. 그 이름은 아무도 안 쓰겠지? 하고 자신만만하게 '애쉴리' 너무 멋지고 중성적인 이름, 난 이걸로 정했다.
"자, 이름들을 정했으면 자기들이 아는 인사말을 하면서 자기 소개하기를 영어로 하는 거야."
다들, 쑥스러운 영어 발음으로 번호 순대로 일어나서 "Hello~"로 시작하는 평범한 자기소개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과는 학번 순서가 이름의 ㄱ,ㄴ,ㄷ~순서였다. 그것도 남학생 먼저, 여학생이 그 뒤. 나는 여학생 중에서도 '사'씨니 한참 뒤였다. 느긋하게 친구들이 하는 인사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발표할까 궁리 중이었다. 어느새, 내 앞에 H의 차례가 오자, 내 뒷 번호 S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긴장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드디어 내 차례,
"Hello, Let me introduce~"
"아, 학생이 000?"
"Yes, I'm"
간단한 영어 대답이 엉뚱했던지 다들 웃기 시작했다. 영어강사도 한참 웃더니 강의대에 기대 서서 출석부 학생 이름 옆에 영어 이름들을 메모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크게 웃는다. 이번에도 저 멋진 남자에게 이뻐 보이긴 글렀다.
"학생 영어 이름은 정해졌던데?"
"네?"
"학생 영어 이름이 리어카라며?"
애들이 난리가 났다. 책상이랑 의자가 붙어있는 작은 강의실 책상 의자 중에 하나가 뒤집혔다. 몸집이 큰 B가 웃다가 옆으로 넘어갔다. 더 큰 난리가 났다. 얼굴이 벌게진 B가 주섬주섬 일어나고 소리가 좀 잠잠해지자 영어 강사는 내가 서있는 채로 리어카가 콩글리쉬의 대표적인 단어라며 한참 설명을 했다. 한참이 아니었어도, 한참이었다. '씨~, 주에 2번 내려온다는 영어 강사까지 그 일을 들었다면, 이 소문이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퍼진 거야?' 저 멋진 남자에게 이뻐 보이긴 이미 수업 시작 전에 글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내 소개는 계획과는 매우 다르게 끝이 났다.
"Hello, I'm Rear Car. Do you know the why?"
결국 또 다들 한차례 웃고, 내 뒤로 남은 S부터 HM까지 대여섯 명이 발표하고 그 시간은 끝이 났다. 아마 간단한 첫 만남 인사 같은 걸 연습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 설정 중에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은지 기본 문형도 익혔던 것 같지만, 그 수업 내용 중에 또렷이 남는 것은 '리어카'가 콩글리쉬이고 실제 미국에서는 그런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게 생긴 손수레는 'handcart'라고 부른다는 사실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부러 암기하지 않았는데, 아직도 기억하는 단어들... 이렇게 확실한 수업의 효과라니!
첫 수업을 기념하며 그날도 우리 동기들은 후문 쪽 술집에 우르르 몰려갔다. 어스름 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하나둘씩 집으로 각자의 일로 떠나가면서 모두들 나에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고 갔다.
"오늘은 리어카 타지 말고~"
결국 또 마지막 종착지는 코끼리 파전이다. 리어카를 타지 않으려면 막걸리만 안 마시면 되는데, 내 막걸리 인생은 사실 이미 리어카를 탄 날 끝이 났다. 이미 막걸리를 거의 마시지 못한다.
"야~ 000, Hello 리어카!"
코끼리 파전 집에 우리가 모여있다는 말을 들은 3학년 선배 둘이 들어오며 하는 인사다. 아니, 수업 끝나고 다 뭉쳐 다니다가 여기 왔는데 도대체 저 소문은 어디서 들은 거야? 이놈의 과는 뭐가 이래 빠르게 투명해. 하긴, 그 영어강사까지 어디선가 내 리어카 탄 이력을 듣는 와중인데... 이러다 일만 육천 GS 학우(맨날 모여서 데모하면 하는 소리다)가 다 알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라지 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날도 한참 마시고 떠들고 웃다가 각종 엽기 행각들을 펼친 뒤 여기저기 흩어졌다. 취한 중에 집까지 뚜덕뚜덕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대학교 다니면서 샬랄라 원피스 입고 구두 신고 귀고리 하고 긴 머리 휘날리며 책을 떨어뜨릴 일은 없겠군.... 어쩌면 다행인가? 엄마한텐 미안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의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또 마셨어? 넌 대학을 다니는 거니? 술을 마시러 다니는 거니? 어디서 돈을 벌어서 술을 사 처먹고 싸돌아다니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