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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이 알려준 글쓰기 비법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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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 획책하는 자의 말엔 부끄러움이 흐른다. 마음속에 의심이 가득한 자의 말은 지리하다. 바른 사람의 말은 말수가 적고 간결하다.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말수가 번다하다. 무고하려는 자의 말은 그 말이 왔다 갔다 한다. 정도를 지키지 못하는 자의 말에는 비굴함이 흐른다.”


글을 쓸 때 간결하게 쓰라는 충고를 많이 한다.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조언이다. 그런데 글을 간결하게 쓰려면 단어를 고치거나 문단을 줄이는 게 우선이 아니다. 글 쓰는 이의 마음이 우선이다. 마음이 바르고 할 말이 분명하면 글은 절로 간결하게 써진다. 위 인용 글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구절인데, 현대의 글쓰기 조언으로 받아들여도 손색이 없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바른 사람의 말은 말수가 적고 간결하다”이다. 이는 최근 강조되는 글쓰기 원칙과 맥이 닿아있다.


다만 요즘의 ‘간결하라’는 충고는 말단(단어 수정이나 문단 축약)에 치우친 반면, 계사전의 가르침은 근본(바른 마음)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르다. 「계사전」의 내용을 글쓰기 지침으로 삼아보라고 권하면 사람들이 웃을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한 옛날 책에서 무슨 배울 게 있겠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옛것이라고 다 낡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신선함을 주기도 한다. 그런 가치를 재발견했을 때 비로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저 구절은 온고지신의 경험이었다.


페이스북이나 브런치에 글을 쓸 때, 어떤 때는 단숨에 써 내려가도 내용이 명확한 반면, 어떤 때는 제법 많은 시간을 공들여 썼는데도 글이 지리멸렬한 경우가 있음을 경험한다. 「계사전」의 조언에 비춰보면 그 이유가 딱 맞아떨어진다. 전자는 마음이 정리되고 뜻이 분명했을 때였고, 후자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글쓰기 지도서가 넘쳐 난다. 책이 안 팔린다는데, 글쓰기 지도서가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사이버라는 가상공간에 글을 쓸 기회가 많아졌기에 글을 좀 잘 쓰고 싶은 욕구가 팽배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데 의외로 글쓰기 지도서들에서 간과하는 것이 위에서 말한 ‘바른 마음’이다. 이것은 근본이다. 근본이 서면 지엽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반면 지엽에만 매몰되면 끝이 없다. 글쓰기 책들이 난립하는 현상은 어쩌면 글쓰기에서 기교와 지엽에 매몰된 탓은 아닐는지?


다시 한번 계사전의 저 글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본다. 시대를 관통하는 불변의 금언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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