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결혼 전 직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직원 한 두 명이 전부인 기획실에 다닐 적이다.
나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한 권의 책 표지와 처음 만났을 때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진식자를 이용해 책 표지에 들어갈 간단한 글자 작업만 했을 뿐인데도 뿌듯함은 하늘을 찔렀다. 꼭 나의 첫 책이 출간된 느낌이었다. 종이와 글자는 그렇게 나와 친근해졌다.
어딜 가든 글자는 나를 반겼고 나 또한 글자에 관심이 많았다. 글자는 다양한 생김새와 다양한 두께감으로 단어나 문장에 효과를 줄 수 있음이 멋져 보였다. 글자는 변화무쌍했다. 물이 담기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듯, 갖가지 종이의 재질에 따라 변모했다. 느낌도 달랐다. 매끈한 종이 위에선 빙판길에서 춤을 추듯 하늘거렸고, 거칠고 두툼한 종이 위에선 도끼에 쪼개진 껍질 달린 장작처럼 거칠었다. 기본 서체인 명조체와 고딕체만 봐도 그랬다.
종이 위에 글자, 글자 아래 종이가 아닌 서로 품고 살아가는 둘의 관계성은 상호보완 관계였다. 이 비밀스럽고 신기한 둘을 난 관심 가지면서 메모란걸 시작 했다. 어쩌면 잊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건지도 모른다. 메모지, 수첩, 노트, 다이어리를 직접 구매하고, 얻고 선물 받으며 기억하려 했다. 글자는 기록을 해야만 잊지 않았다는 안심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메모는 기록만 했지. 차후 다시 찾아보는 일이 더디고 힘들어 기억에 효과적이진 않았다. 효과적인 기록을 위해 종이와 펜에서 메모앱으로 옮기고 다시 글쓰기 앱을 뒤적이다 현재의 공개적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만났다.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난 무엇을 그렇게나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 걸까? 질문과 의문이 많은 나다.
얼마 전 나의 첫 에세이 책이 출간되었다. 에세이 모임에서 회원님들과 함께 쓴 책이다. 글을 기록할 때는 아주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스스로 만족했다. 하지만 막상 글이 타이틀을 달고 예쁜 옷을 입고 책 속 한 편의 글이 되어 나온 모습을 보니 낯이 뜨거워졌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회원님들은 책 출간으로 기뻐하는데, 사실 난 그 기쁨보다 부끄럽고 실망스러움이 더 컸다. 가족들이 나의 글을 읽은 뒤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말이 너무 많다. 광고 카피처럼 간단하게 써!.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넣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타이틀에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을 넣었으면서 환경미화원의 이야기가 쏙 빠져 있다는 것' 모두 인정한다. 내가 봐도 그렇게 읽혔으니까. 글을 다듬고 고치기를 반복했지만 아직은 더 많은 독서와 글쓰기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난 실망해서 남편에게 '나, 이제부터 글쓰기 안 해야 될 것 같아요.' 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
'당신이 언제 유명한 작가 되려고 글을 썼어? 아무나 마음먹는다고 그런 작가가 되는 거 아니잖아. 그들은 아주 소수일 뿐이야. 그런 건 로또라고. 그냥 글쓰기가 좋아서 쓴 거잖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지금처럼 쓰면 돼. 취미로' 갈등하던 나에게 남편의 말은 큰 용기를 주고 확신을 주었다.
새해에는 다시 용기를 내어 기억보다 낫다는 기록을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나의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