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고향에서 만났지요. 좋은 수필과 친절함까지
동창회 송년모임으로 지난 금요일 퇴근 후 고향에 갔다. 운전이 서툰 나를 믿지 못한 동생이 운전을 자처했다. 사실 동생은 목요일부터 한쪽 이가 아픈 상황이었다. 걱정이 되어 병원엘 빨리 가보라고 했지만, 겁이 나서인지 예약이 안된다는 이유로 병원 가길 미루고 있는 것 같았다. 약국에서 산 약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동생이 지금까지 치과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동생은 도저히 아파서 안 되겠는지 다음날 아침 일찍 치과에 가자고 먼저 얘기했다. 고향이긴 하지만 길어야 하룻밤 겨우 자고 서둘러 우리집으로 가곤 했던 터라 시내 병원이나 은행 위치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찾다가 진료를 잘하는지 보다 주차하기 편하고 집에서 가까운 치과를 찾아냈다.
다음날 아침. 동생과 난 걱정을 한 짐 짊어지고 오픈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치과 주차장에 도착했다.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도착한 것이다. 그만큼 동생의 치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2층에 있는 치과는 생각 보다 문이 일찍 열려 있었다. 너무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보다 더 일찍 온 환자도 있었다.
동생이 진료를 받는 동안 난 휴대폰 배터리 충전을 위해 휴대폰을 직원에게 맡겼다. 휴대폰이 없으니 자연스레 오른쪽 책꽂이에 눈길이 갔다. 화려한 잡지들 사이에서 좋은 글이 가득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다소곳하게 있던 '여수수필 ' 39집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늘 좋아하는 고향이지만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살았기에 사실 고향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런 생각이 많았는데 고향 작가들의 글을 만나다니 꿈만 같다.
우연히 보물을 만난 듯 고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가득했다. 수필 한 편 한 편을 정성 들여 읽어 보았다. 지명이 낯설지 않고 좋은 글을 만나서인지 수필이 술술 읽혔다. 여러 편의 수필을 재밌게 읽었다. 그중 한참 이희순 회원 작가님의 '독자는 귀신을 능가한다'는 글의 내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귓가에 속삭이는 익숙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겨운 사투리다. 고향은 여수지만 경상도에서만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난 어디를 가든 고향 사투리가 들리면 귀가 쫑긋해지고 미소가 번진다. 그냥 반갑고 좋다. 이럴 때 난 고향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어지는 습관이 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고향의 사투리는 자꾸만 엄마 품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따스함과 편안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 크지 않은 눈을 최대한 동그랗게 뜨고 읽고 있던 책을 덮은 채 카운터에 있는 직원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빠져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직원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행복해 보인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가지는 관심 어린 표정과 말투는 친절함이 몸속 깊숙이 배어 있는 듯했다. 사랑스러운 딸이 아빠를 대하듯, 엄마를 대하듯 하는 따듯한 말투에 그만 반하고 말았다.
천사 직원 : 어머님 이름은요?
할머니 : ㅇㅇㅇ~
휴대폰을 내밀며 말을 흐린다.
주변 직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채 할머니의 입만 보고 있다. 직원들은 할머니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갸우뚱 거린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그때 처음 할머니의 이름을 물어봤던 천사 직원이 이번엔 전화번호를 묻는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얼버무리는 투로,
할머니 : '삼' 이요!
엉뚱한 대답만 한다.
천사 직원은 할머니가 내민 휴대폰에 적힌 종이를 자세히 보더니 컴퓨터를 확인해 본다. 이 전에도 이곳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단골인 듯했다.
천사 직원 : 엄마, 내가 다시 적어줄게!
할머니의 휴대폰에는 누군가 적은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가 글씨를 읽거나 쓰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적긴 적었는데 제대로 적지 못한 듯 보인다.
할머니 : 다 됐을까?
천사 직원 : 엄마, 이쁘게 해 줄게 다 됐네!
할머니 : 어디 전화 좀 하려고!(휴대폰을 빨리 돌려받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천사 직원 : 이제 물이 묻어도 괜찮아요!
우리가 엄마 이름을 모르니까 앞으로 접수할 때는 이걸 보여줘요!
직원은 컴퓨터에 할머니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내용을 프린트해서 자르고 그 위에 유리테이프까지 꼼꼼히 붙여 눌러 준 뒤 다시 할머니에게 휴대폰을 돌려준다.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70대 우리 엄마가 혼자서 병원에 가면 직원들의 물음에 알아듣지 못해서 쉽게 답하지 못하고 버벅댈 텐데, 이곳에 환자로 오면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겠구나! 통증으로 아픈 마음, 불안한 마음 한꺼번에 치료받을 수 있겠다는 나만의 확신! 꼭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린 동생의 치과 진료는 엑스레이까지 찍었지만 원인을 알아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동생의 치료를 기다리는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더 머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난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친절로 마음 치료를 공짜로 받은 느낌이다. 환자로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다.
이곳의 방문이 처음이라 의사 선생님의 진료 실력은 잘 모르겠으나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표정치곤 직원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직원들의 친절하고 관심 어린 말투와 표정을 보니 이곳이 환자 중심의 치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