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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l 24. 2024

엄마의 시간은 흐른다

요즘 들어 엄마가 자주 하는 말 "늙은 사람들은 허구한 날 탱탱 놀아도 시간이 남는데,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 모자라 맨날 바쁘니까 그 시간 좀 빌려주면 안 될까?" 그래 가끔 엄마의 시간을 빌려 쓰고 싶다. 엄마의 쉬어가는 시간 틈이 길어져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처음에는 한글을 모르는 엄마를 위해 간단한 단어책 그다음엔 색칠공부책, 색칠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다음으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퍼즐책을 샀다. 퍼즐도 몇 번 끼워 맞추더니 재미가 없나 보다. 그다음엔 트로트 메들리가 나오는 라디오 겸 노래가 나오는 소형 기계, 몇 달 전에는 동화 읽어주는 책. 방귀쟁이 며느리는 동화책 이야기 중 한 가지인데 엄마는 유난히 이 야기를 좋아한다.


처음 책 사용법을 가르쳐 줄 때부터 엄마는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었다.

"근데 며느리는 왜 자꾸 방귀를 뀐대?" 엄마는 우스워 죽겠다며 얘기할 때마다 목소리가 들떠 있다. 잘됐다. 엄마의 재밋거리가 하나 생겼으니.


사실. 나의 기억에 담긴 젊은 엄마는 원래 방귀를 잘 뀌었다. 엄마가 젊었을 땐 아주 바쁜 사람이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게 아프지 않고서는 드러눕는 일이 별로 없었다. 흙 묻은 신발, 동동 걷어올린 바지 차림에 동쪽에 번쩍 서쪽에 번쩍 하던 엄마다. 형편이 어려울 때라 겨우 먹을 수 있는 보리밥을 앉지도 못하고 서서 대충 먹고 밭일을 다니곤 했었다. 내가 어렸을 땐 그걸 몰랐다. 철없는 난 엄마에게 "엄마는 왜 이렇게 방귀를 많이 뀌어?" 하며 싫은 소리를 자주 했다. 그때 엄마는 별다른 말없이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미안하고 무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난 정말 철없는 딸이었다.


아무튼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다. 동화책에 흥미가 다 떨어지기 전에  다시금 엄마의 시간 메울 거리를 찾아 두었다. 이번엔 선반이다.


오래전 시간을 빌려다 쓸 만큼 시간이 부족할 땐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 엄마는 치고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다. 엄마에게 메탈 3단 선반을 사 드렸다. 일반적인 용도는 누구나 알듯이 널브러진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위해서다. 4단을 사고 싶었으나 허리굽은 엄마에게 4단은 발뒤꿈치를 들고서도 힘든 높이라 3단을 샀다.


내가 생각하는 이 선반의 주된 용도는 엄마의 시간 채우기다. 엄마는 차가운 방바닥에 두 다리를 펴고 선반의 물건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흘러가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다음날 다시 물건의 자리를 옮길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 엄마를 심심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엄마는 매일 놀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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