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생각해 본다. 우선 오래전부터 사용한 갖가지 포장지? 그중 보자기는 물건을 감싸는 포장 재료였다. 물건을 오롯이 감싸야하는 보자기는 포장 속 물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값싼 물건도, 책 한 권도 예쁘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고 마무리로 매듭까지 단단하게 지으면 한층 물건의 가치가 상승된다. 얼마 전 일상에서 많이 보고 사용했던 보자기의 효율성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있었다.
휴가차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에 다녀왔다. 건물 외관에서부터 마음을 끌어당기더니 몇 개의 매끈한 돌 의자가 햇볕에 달궈져 열기와 윤기를 동시에 뿜어내며 반기고 있었다. 건물 내부를 관람하던 중 "오롯이 감싸"라는 이 문구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발걸음이 딱 멈췄다. 잡생각이 사라진다. 온몸으로 한. 글. 자. 한. 글. 자. 씩 스며든다. 보자기에 대한 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맞아. 보자기는 포장을 한다기보다는 감싼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고 어울려. 샘플로 접어 둔 책 보자기를 맴돌다, 나도 한번 보자기로 책을 포장해 본다. 나름 마음에 들어 사진 한 장 남긴다.
한 줄의 글 "오롯이 감싸" 이 말이 갖는 의미가 뭘까. 의미를 확장해 본다. 보자기의 할 일은 물건을 감싸는 일. 그것이 보자기의 역할일진대. 순간 뜬금없이 독서법 중 하나인 관독(觀讀)이 생각난다. 책을 읽을 때 어떤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읽는 것. 바로 그거다. 사람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엉뚱하게도 사람이 연상된다. 무수한 사람의 행태가 떠오른다. 왜 자꾸 사람과 연결 지어 상상이 되는 건지. 사람을 걱정에서, 두려움에서, 상처에서 잘 이겨내라며 감싸 안아주는 역할. 안아주긴 안아주되 진심 어린 마음이 우러나와 포근히 근심걱정을 녹아내려줄 것 같은 손길. 오롯이 마음 감싸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
세상은 감정세상에서 현실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변형으로 이어지면서 이중성으로 전염되고,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양 스며들다가 서서히 젖어든다. 자기도 모른 채. 겉치장으로의 역할에 충실히 하고 있다. 화장으로 얼굴을 감싸듯 포장하는 사람, 옷가지로 자기의 단점을 보완하고 숨기는 사람, 설익은 지식으로 대단한 지식인인 양 포장하는 사람, 날 선 욕심과 시기 질투로 매몰된 사람이면서 온전히 착한 사람 행세에 빠져있는 그들도 모두 그저 포장으로 감싸 안은 사람일 뿐이다. 날것의 찬연하고 순수함을 쉽게 감쌀 수 있는 변신. 변신은 보는 사람의 눈을 가리고 마음에 장막을 친다. 다양한 재질의 소비 제품들로 구색을 맞춰 감싸고도는 그것은. 어쩌면 그것은 포장된 인간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같은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것을 능력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나답게 살지 못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시선에 맞추어 사는 것. 그것은 빈 깡통처럼 요란하기만 하고 쉽게 일그러지고 찌그러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회에서 통념처럼 정해진 좋아 보이기 위한 많은 것들이 그렇다. 이를 쉽게 적응해 가는 이들도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몸과 마음에 치장이 힘든 사람들이 어설픈 포장을 거둔 뒤 순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자연인의 삶으로.
타인을 살짝 뒤로 젖혀두고 나는 과연 어떨까. 오롯이 나를 돌돌 감싸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 애쓰고 있는 모습, 기대치에 부응하려는 모습. 그게 아니라면 일하는 모습, 건강한 모습, 노력하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독서하는 모습이 나의 포장재일까. 뭐든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미소일까, 남들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일까, 가만가만 호흡을 고르며 나를 들여다본다. 나를 찬찬히 본다. 나의 그림자를 보고, 거울로, 사진으로 나를 객관화시켜 보려 시도한다. 나라는 사람의 실체가 어렴풋이 보이려 한다. 난 아직 경험치가 쌓이지 않은, 쌓는 중인 아주 평범한 한 사람임을 재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