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름 이메일링 서비스
― 이사 어떻게 할 거야?
― 택시 이사 하려고.
― 쿨 해.
첫 집에 갈 때는 캐리어 하나였다. 상황이 어찌 될지 몰라 회사 갈 때 필요한 깔끔한 옷, 신발, 속옷, 애착 인형 순덕이랑 책 몇 권 그게 끝이었다. 3개월 정도 살았는데도 짐들이 알음알음 늘어났다. 이번 이사에는 캐리어 두 개 정도 되겠다 싶었는데 정말 캐리어 하나랑 박스 하나로 정리되었다. 단출한 짐이 떠돌이임을 증명했다. 미니멀리스트도 떠돌이는 못 이기지.
택시를 부를 차례. 카카오 일반 택시로 할까, 벤티(큰 사이즈의 택시) 아니면 다마스로 할까 고민했다. 아저씨에게 싫은 소리 들을 확률이 높은 건 택시, 벤티, 다마스 순이었다. 가격이 싼 것도 같은 순이었다. 짜증과 가격의 타협점인 벤티를 부르려고 했는데 주변 지역에 없어서 부를 수 없다는 알림이 떴다. 흠. 그래서 가격의 손을 들었다. 기사 아저씨가 착할 수도 있잖아, 라는 위안으로 일반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잡히자마자 아저씨에게 전화했다.
― 지하 2층 주차장으로 오셔야 해요. 그리고 집도 있어서 트렁크 사용을 해야 한다는 거 알려드리려고요.
― 예에….
택시 이사 손님이니까 싫으면 처음부터 취소하세요, 하는 심정으로 기사님께 말했는데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마침표 없는 저 흐릿한 ‘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짜증나는데 참아본다는 ‘네’인지, 괜찮다는 ‘네’인지, 운전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손님이 말을 거니까 형식상 반응하는 ‘네’인지 그냥 알겠다는 ‘네’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의 반응을 보고 마음을 단단히 준비하거나 혹은 조금 편하게 기다릴 심산이었는데 그저 초조해지고 말았다. 짐을 보고 성질낼 가능성을 여전히 점칠 수 없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 지하 주차장은 어떻게 가는 거요?
― 아… 저도 잘 몰라요….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없었다. 말없는 통화를 8분이나 지속했다. 열심히 굴러가는 바퀴 소리만 들렸다. 내가 지하주차장으로 부르는 바람에 8분이나 손님을 못 받으셨어. 또다시 불안해졌다. 저 침묵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운전집중으로 인한 침묵인지 화 삭임의 침묵인지 모르겠다. 열 받아서 취소하면 어쩌지. 다행히도 저 멀리 택시가 스멀스멀 보인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싹삭한 척 말했다. …. 기사님은 나의 짐을 보더니 말없이 트렁크를 열었다. 문제는 그 차가 LPG인데다 안에 개인적인 짐까지 들어있었다는 거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땀이 삐질 났다. 나는 다른 택시를 잡아야 하나, 그런다고 하면 아저씨가 짜증 낼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내 짐과 트렁크를 눈대중으로 훑어보더니 자기 짐을 들어 택시의 조수석에 앉혔다. 내 짐은 트렁크에 넣어주었다.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은 ‘네’와 ‘침묵’이었나 보다. 택시 안에서는 한마디도 안 했다.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는 일도, 말 거는 일도 없었다. 의사들에게 치질 이야기를 하는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질 증상을 듣는 건 자연스러운데 환자가 의사에게 치질 증상을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워한단다. 나는 베테랑 택시 이사 기사님의 차에 타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졸음이 쏟아졌다. 속으로는 택시에 실렸을 수많은 이삿짐을 응원했다. 곧 친구가 많이 생길 거야. 노트북에게는 책상이 생기고, 이불에게는 선풍기가 생기고, 향수에게는 선반이 생길 거야. 친구들이 늘어난 다음에는 다마스로 그다음에는 출장 이사 서비스를 부를지도 모른다. 해가 지날수록 짊어질 것은 늘어나니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내 짐을 차에서 모조리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시동을 걸어 떠났다. 지칠 의사 같은 택시 기사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미적지근한 사람이 되지 말자 다짐했었다. 그런데 미적지근도 꽤 괜찮겠다는 맘으로 선회했다. 얼어붙은 딱딱한 마음에는 미적지근이 딱 적당한 온도라는 걸 느꼈다. 때로 따뜻함은 너무 뜨거우니까. 나는 캐리어를 두 손으로 들고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