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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un 24. 2021

구멍의 해방

More Than Less 기고

 얼굴에는 눈구멍 두 개, 콧구멍 두 개, 귓구멍 두 개, 입구멍 하나가 있는데 마스크로 콧구멍과 입구멍을 가리게 됐으니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구멍은 총 네 개다. 아직까지는 가려진 구멍 세 개 보다 드러난 구멍이 많은 셈이다. 

 마스크를 끼면 불편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장점도 있다. 아르바이트생 A는 무례한 손님에게 입 모양으로 욕을 한다 했고, 직장인 B는 화장을 생략한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줄었다 했고, 추운 걸 못 참는 C는 왜 어르신들이 겨울에 마스크를 차는지 이제야 이해했노라 했다. 마스크에 대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존재조차도 까먹을 정도였는데 이제야 마스크의 진정한 기능을 깨달은 느낌이다. 뭣 같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 늦잠을 잔 아침 택시 안에서 허겁지겁 화장할 필요가 없다. 목도리에 장갑에 모자를 써도 겨울에 추운 이유를 드디어 알았다! 코로나는 참, 생각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게 만든다.


 창작과 비평 189호*(이하 창비)를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군 단위의 시골에서는 코로나 전부터 코로나 시대였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인해 사회적 거리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마스크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약국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려는 노인은 도시의 자녀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란다.

 이 글을 읽고 한 기사가 떠올랐다.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자 수가 감소해 마을버스의 배차 간격이 30분으로 늘어났다는 기사였다. 요지는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는다는 것. 헤드라인을 보고 이건 도시 시민, 사실은 서울 시민을 대변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 대부분의 메인 뉴스가 서울 중심으로 나온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군 단위의 시골에서는 코로나 이전에도 버스 배차간격이 30분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시골 사람은 버스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 왜 영화관에 가려면 30분 걸어서 30분 버스를 타고 1시간 기차를 타야 하나. 버스 회사도 승객이 내는 돈으로 굴러간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러한 질문 기질은 코로나 시국에도 번뜩였다. 왜 자영업이 문을 닫아야 하나. 왜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안 되나. 8시 24분경, 회사를 출근하는 지옥철에서 든 생각이었다. 나는 아마추어같이 팔을 들고 지하철에 들어갔고 내 팔은 사람들에 껴 내려오지 못하고 손가락은 내 귀 근처에 그대로 자리한 채로 세 정거장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골똘히 생각하는 자세였다. 옆 사람이 손바닥만한 폰으로 무슨 기사를 읽고 있는지 보이고, 앞사람이 듣고 있는 브레이브 걸스의 ‘운전만해‘가 이어폰 너머 내 귀까지 들리고, 대각선 사람의 숨결까지 느끼는데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코로나에 안 걸린다고? (과연 마 스크의 재발견은 어디까지인가) 왜 회사원은 회사를 여전히 출근하는 건지, 자율 출근제나 부분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을 보고는 왜 회사만 셧다운 앞에서 자율인 건지 의문이 들었다. 왜 누군가만 강제로 큰 손 해를 봐야 하나. 그건 우리나라가 어느 지방의 떡볶이집으로 굴러가지 않고, 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로 인해 굴러가지 않고, 굴지의 기업들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정말로?)


 언제나 그래왔듯, 위기가 닥치면 피해를 보는 쪽은 사회적 약자다. 약자가 겪는 고통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고 추상이 아닌 구체고 머리가 아닌 피부다. 당사자가 되는 것과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당사자를 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앞서 언급한 창비의 글을 다시 빌려오자면 시골 사람들은 농번기 때 외국인 노동자의 일손이 꼭 필요한데 코로나로 인해 그들의 입국길이 막혔다. 경북 영양군은 지자체의 돈으로 자가격리 시설을 빌려 외국인 노동자를 2주간 격리한 후 일할 수 있도록 방책을 마련했다. 그런데도 국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에 지자체 농민이 들어가긴 한 걸까?

 서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도, 가끔 고향에 대한 구체성을 잊어버린다. 영양의 밭에서 고추를 따는 농부는 실제로 존재한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실제로 사회성을 기르고, 분식집은 1인분에 3천 원의 떡볶이를 팔아 실제로 생계를 유지한다. ‘코로나로부터의 승리’라는 국민 단합이 멱살을 잡고 우리를 앞으로 끌고 갈 때, 누군가는 실제로 떨어져 나간다. 까막눈으로 모른 채하고, 까막귀로 흘려버리면 편하다. 그러나 내가 듣지 않는 것은 상대방의 입을 막는 것이고, 내가 보지 않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막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입과 코의 구멍을 막고 살고 있지만 사실 뿌리 깊이 막힌 건 눈과 귀가 아닌가.


*『창작과 비평 189호』, 「저밀도와 소멸위험, 농촌에 코로나 ‘이후’란 없다」 66p, 정은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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